1. 부서가 바뀌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신설된 부서라 초기 세팅을 하며 일이 쏟아집니다. 부서장은 당분간 조기출근에 야근을 필수라고 하십니다.
2. 부서 이동을 통보받은 날, 둘째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기관지염으로 시작해 폐렴 중이염으로 이어졌습니다. 닷새간 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둘째는 입맛이 없는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입맛을 잃은 둘째가 베이비시터가 주는 밥을 거부합니다. 그나마 엄마가 먹여줘야 한숟갈이라도 먹습니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니 병원도 매일 갑니다.
3. 첫째는 어린이집 방학이었습니다. 부서가 바뀔지 모르고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휴가를 내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방학 동안에 자율등원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등원하지 않는 걸 알기에 저도 휴가를 내고 아이와 있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는 정말 힘든 한 주 였습니다. 선후배 동료들은 야근을 하는데 저는 눈 질끈감고 부서장께 양해를 구하고 칼퇴근을 했습니다. 일단 퇴근해서 둘째 병원에 데려가고 밥을 먹이고, 재운 다음 노트북을 켜고 잔업을 하고 새벽 2,3시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친구들 없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삐죽거렸고 둘째는 아파서 칭얼대고… .
한 마디로 회사도 아이들도 양보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몸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열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진통제로 버티다 금요일에는 퇴근 길에 병원에 들렀습니다.
“오늘은 어디가 안좋아요?”
“…. 그냥 다요. 힘드네요.”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힘들다’는 이상한 답을 했습니다. 복직하고는 워낙 자주 아팠던터라 의사선생님은 알아서 진찰을 하십니다. 진단명은 과로로 인한 탈수.
바쁘고 바쁜 이 생활이 좀 적응되며 나아지나 했는데 새로운 부서로 옮기고 둘째가 아프며 다시 탈수가 된 것이죠. 의사 선생님은 약을 먹을 게 아니라 쉬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워킹맘이 되고나니 가장 어려운게 휴식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얼마전 방영한 SBS스페셜 ‘엄마의 전쟁’ 이야기를 하십니다.
“’엄마의 전쟁’ 봤어요? 그 프로그램 보면서 난 OO씨 생각 계속 났어요. 워킹맘들 그야말로 전쟁하는데 딱 OO씨 상황이더라고요.”
수액이라도 맞고 가라셨지만 둘째 밥을 먹여야 한다고 그냥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 아이들 밥 먹이고 재우고 노트북을 켭니다. 눈을 떠보니 새벽 5시. 일을 하다 엎드려 잠들었나봅니다. 잠은 오지 않고 일은 하기 싫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생각나 ‘엄마의 전쟁’을 찾아봤습니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를 놓지 않는 워킹맘들. ‘내가 선택한 길’ 이기에 그들은 아무리 고단해도 마음이 쓰려도 겉으로는 웃습니다. 같은 워킹맘 입장에서 그 웃음이 서글픕니다.
프로그램은 워킹맘의 일과를 보여주며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해보진 않았냐’고 묻고 ‘본인은 여자인 것 같으냐 엄마인 것 같으냐’고 묻습니다.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습니다. 회사를 그만 둬야 하나 매일 생각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힘들고 지치지만 저는 제 일이 좋습니다. 하지만 입 밖에 내기는 어렵습니다. 언젠가 외국의 기사에서 ‘워킹맘들에게 있어 가장 힘든 커밍아웃은 일이 좋아서 한다는 것’이라고 읽었던 기억입니다.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크게 다르진 않나 봅니다.
워킹맘으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바지자락을 잡고 출근하지 말라고 울기 일쑤고 남편은 밤에 잔업을 처리하고 있으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회사를 다녀야겠냐고’ 거듭 묻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양가 부모님들은 회사에 다니는 딸, 며느리 때문에 아이가 더 자주 아픈 건 아닌가 걱정하시고 사표를 내라고 하시지요. 심지어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 조차도 ‘얼마 벌겠다고 저 어린걸 남의 손에 맡기고’ 라시며 혀를 차십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어 누구에게라도 털어놓으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힘들면 그만 두라고. 누가 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했냐고 오히려 공격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일 하는게 좋아요’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워킹맘이 얼마나 될까요.
‘엄마의 전쟁’에 나온 남궁정아 씨가 안쓰러웠던 건 그 때문입니다. 내 일이 좋다고,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지 않겠냐고 당당히 밝힌 그녀는 방송이 나가고 이기적이라는 공격을 참 많이 당했습니다. 본인이 여자인 것 같냐 엄마인 것 같냐는 질문에 정아 씨는 ‘여자도 엄마도 아닌 것 같다’고 답합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정아 씨는 사람일 뿐입니다.
옆에서 둘째 딸이 자고 있습니다. 자고 있는 딸에게 속삭입니다.
네가 커서 엄마가 되면, 그 땐 좀 나아질까?
지금과 같다면 너한테 참 미안할 것 같은데 말이야.
네가 만약 아이를 낳고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면
지금의 엄마처럼 외롭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행복하게 일 하고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