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도 잘 보냈어?
주말이라고 손주 둘 데리고 가서 집안 다 어지르고 정리도 못하고 와서 미안.
엄마 보고 싶어서 갔는데 정작 애들 돌보느라 엄마랑 이야기도 많이 못하고, 흰눈썹 뽑아주는 것도 까먹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미안하고 아쉬워.
아침에 감기약을 먹는데 갑자기 엄마 감기 옮진 않았겠지? 생각이 들더라. 환절기라 웅이 결이 모두 감기로 고생하고 있는데 나까지 감기에 걸려서 좀 쉬겠다고 친정에 갔으니… 엄마아빠는 감기 걸리면 우리한테 옮길까봐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데 우린 감기걸렸다고 엄마, 할머니 품으로 숨어버렸네. 이래서 내리사랑인가봐. 또 미안.
밤새 내 기침소리에 엄마가 방 앞에서 서성인 거 알아. 가습기 틀어주고 그걸로 부족할까봐 젖은 수건 널어주고.. 이불 더 덮어주고. 어릴 때, 내가 아프면 엄만 침대 밑에 이불 깔고 잤잖아. 그 생각 나더라. 아침에 일어나니 무뚝뚝한 아빠도 ‘힘들면 한약이라도 먹어라’고 한마디 툭 던졌어. 내가 결이 낳고 사표낸다고 했을 때, 내새끼 공부한거 아깝다고 애들은 애들 인생이 있고 넌 니 인생이 있으니 회사 계속 다니라던 아빤데 내가 자꾸 아프니까 마음이 쓰였나봐.
응. 사실 각오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어. 새벽에 일어나서 애들 아침먹이고 정작 나는 물 한모금도 못 먹고 출근하기 일쑤고 회사에서는 일에 치이지. 마음 한 구석은 아이들 생각에 묵직해.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두 아이, 예쁜 그 모습은 오늘 놓치면 되돌릴 수 없는데 말이야. 자면서도 엄마를 찾는 이 시간은 내가 부모로 사는 동안 그리 길지 않을텐데 말이지.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가면 그리웠던 만큼 온 힘을 다해 놀아줘.
애들 자면 난장판인 집이 보이지. 웅이아빠는 설거지하고 난 청소 빨래하고, 다음날 아이들 먹을 간식이랑 먹을 것 준비하고... 그러면 또 새벽이야. 그래도 깨끗해진 집안 둘러보면 내새끼들 내일 맘껏 어지르며 놀아라. 없는 솜씨로 만든 반찬 보면서 내가 직접 먹이진 못해도 이거 먹으면서 엄마 손맛 느껴라. 그러면서 위안해. 그리곤 세상 모르게 잠들지. 학창시절에 이 열성으로 공부했으면 수능 만점 받아서 엄마아빠 원 풀어줬을텐데 :p
참, 얼마전에 나 대상포진도 걸렸었다? 힘들긴 힘들었나봐. 엄마아빠 걱정할까봐 말 안했으니 몰랐을 거야.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수월하게 지나갔으니 걱정마. 복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내 몸이 아픈지도 몰랐었는데 이제 몸 챙길 여유 정도는 생겼거든. 그러니 빠진 살도 다시 오를꺼고, 얼굴색도 좋아질 거야.
이쯤되니 울엄마 잔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복직하라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사표내라고 그랬잖아. 요즘도 전화하면 엄만 가장 먼저 회사 언제까지 다닐꺼냐고 묻고, 엄마딸 상하는 거 보기 싫고,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하지. 맞는 말이야. 전업맘인 엄마의 딸로 자라면서 난 항상 행복했어. 친구들은 비 오면 우산없다고 발 동동 구를 때 난 교문 앞에 엄마가 당연히 있을 꺼라 오히려 기분이 좋았지. 친구들은 열쇠를 목걸이로 하고 다닐 때 난 아무 때나 집에 가도 문이 열려 있어서 참 따뜻했어. 엄마가 내 옆에 항상 있는 게 너무도 당연하고 든든했어. 그래서 나도 내자식들에게 엄마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어.
그런데 난 지금 워킹맘이 되었네. 엄마는 왜 일을 해야겠냐고 물었지. 사실 사표를 내야 할 이유는 명확해. 첫째 웅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엄마를 유독 좋아하고, 둘째 결이는 자주 아파서 손이 많이 가. 웅이 아빠 연봉도 적지 않아. 나 또한 아이들에게 애착이 강해서 유별나다는 말 많이 듣는 엄마야. 전업맘인 엄마 밑에서 자라서 아이들에게 엄마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복직을 했어. 왜? 아이들이 클수록 경제적 압박도 커가고 지금 이 직장에 사표를 내면, 아이들이 자라고 재취업하고 싶을 때 다시 나를 받아줄 곳이 없을 거란 두려움도 있었어. 뭔가 뜨뜻미지근하게 끝내는 기분도 싫었고. 그리고 결이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었어. 결이도 내 나이가 되면 엄마가 될꺼고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할 거야. 그 때 결이가 우리엄마는 이랬었지하면서 나를 참고했으면 좋겠어. 난 전업맘이었던 할머니와 내 이야기를 같이 해줄 수 있을 거야. 결이가 나를 ‘실패한 모델’로 삼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엄마딸 참 이기적이지? 엄만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말이야. 하지만 엄마, 나도 내가 이기적인 것 같아서 육아서 수십권 공부하고 주위 조언도 듣고, 날밤 새워가며 고민했는데 엄마가 일하는 건 문제가 아니래. 엄마가 일하는 걸 아이한테 미안해하는 게 문제라고 하네. 그래서 난 아이들 앞에서 뻔뻔해지려고 해. 힘들고 지칠 때가 많지만 행복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도 하고 있어. 솔직히 아직 할 만 하다고는 못하겠지만, 버틸 만은 해. 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할 만 해질꺼고 더 시간이 지나면 즐길 수도 있을꺼야.
그러니 엄마, 나 좀 응원해줘요. 걱정은 거두고 엄마딸 믿고, 엄마딸이 택한 사위 믿고, 엄마딸과 사위가 키운 손주들 믿고, 짠한 눈빛말고 잘 하고 있다는 눈빛으로 봐주면 좋겠어. 나도 엄마 걱정 안하게 밥 잘 챙겨 먹고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닐께. 웅이 결이가 엄마가 복직해서 큰 스트레스 받는 건 아닌가 잘 살필게. 약속해.
지금쯤 울엄마는 자고 있겠지. 꿈속에선 자식들 걱정 말고, 엄마 입버릇처럼 엄마가 처녀였던 시절로 돌아가서 훨훨 날아다녀요. 참 예쁠 거야 울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