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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05. 2016

31살 연하남과의 첫 데이트

"어머니, 내일 웅이랑 같이 찍은 사진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사진이요?"

"아뇨. 웅이랑 어머니 단 둘이 찍은 사진이요."


전화를 끊고, 잊기 전에 휴대전화 사진앱을 실행합니다. 자는 모습이라도 매일 한 장씩 사진을 남기니 웅이랑 같이 찍은 사진은 수두룩합니다. 그렇지만 어린이집 친구들도 선생님도 보실테니 예쁘게 나온 사진을 골라야지요.


어? 어?? 넘기고 넘기는데 없습니다.

웅이 사진은 많은데,

웅이랑 아빠,

웅이랑 결이가 같이 찍은 사진은 많은데,

웅이랑 저만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아하! 그렇죠. 이건 내 휴대전화니까 내가 사진을 찍으니 사진 속에 내가 없는게 당연하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냅니다.


'여보, 웅이 어린이집에서 나랑 웅이랑 둘이 찍은 사진을 보내라네. 내 휴대전화에는 없으니 당신 휴대전화에서 한 장만 보내줘.'


5분, 10분이 지나도 사진이 오지 않습니다.


'바빠? 지금 못 하는 거야?'

'아니. 보고 있는데 당신이랑 웅이가 찍은 게 없어.'



그러고보니 외출하면 웅이는 아빠 담당, 결이는 엄마 담당입니다. 결이가 어려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하니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었죠.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밥 먹을 때도 웅이는 아빠, 결이는 엄마. 씻을 때도 웅이는 아빠 결이는 엄마. 책을 읽어줄 때도 웅이는 아빠 결이는 엄마. 항상 웅이는 아빠, 결이는 엄마였습니다. 웅이가 ‘오늘은 내가 엄마랑 놀꺼야’라면 ‘그러자!’ 흔쾌히 대답하고도 웅이와 놀면서 힐끗힐끗 결이를 살폈습니다. 결이가 위험해 보이면 책을 읽어 주다가 벌떡 일어나 결이에게 쪼르르.


결이가 웅이보다 어리긴 하지만, 웅이도 아직 어리다는 것. 둘 다 아기라는 걸 잊지말자고 여러번 다짐했는데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터덜터덜 퇴근하는데 웅이의 어린이집 친구 민찬이 엄마가 생각납니다.


민찬이 엄마는 형 유찬이와 동생 민찬이, 연년생 형제를 뒀습니다. 형제 모두 웅이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보니 등원길에 자주 만나는데 어느 날 민찬이 엄마가 형제를 등원시키고 어린이집 문 밖에 서 있는 걸 봤습니다. 조금 있다 유찬이가 어린이집에서 나오더군요.


“유찬이 방금 등원한거 아니에요?”

“아뇨. 등원하는 척만 한거에요. 맨날 민찬이랑 같이 있으면 형이라 관심을 덜 받으니까 이렇게 하루씩 엄마랑 둘만 외출하면서 스트레스 풀어주거든요.”


형이랑 엄마만 놀러 간다고 하면 민찬이가 따라 온다고 할까봐 일단 가방도 메고 원복도 입고 등원한 뒤에, 민찬이가 교실에 들어가면 몰래 빠져나오는 거랍니다. ‘오늘 형은 엄마랑 놀러간다~’ 동생에게 자랑하고 싶을텐데 장난꾸러기 형아는 그 말을 잘도 참아낸다네요. 민찬이가 알아채면 엄마와의 데이트가 무산될 거라는 걸 6살 아이도 알고 있는 거죠. 어린이집에서 뛰어나온 유찬이는 밝게 웃으며 엄마에게 안겼습니다. 둘은 손을 꼭 잡고 뛰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웅이에게 저렇게 해줘야지,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다보니 웅이도 결이도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웅이만 데리고 외출하기엔 '엄마 엄마' 우는 결이가 눈에 밟힙니다.


그래도 하루 휴가를 낼까, 망설이는데 마침 이번주 목요일은 회사 휴무일이랍니다. 보통 평일에 쉬면 베이비시터 이모님에게도 휴가를 드리고 제가 아이 둘과 놀러를 다니지요. 하지만 이번엔 이모님께 결이를 맡기고, 저는 웅이와 데이트를 할 생각입니다. 민찬이 엄마처럼, 결이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어린이집 가방도 메고 집을 나설 생각입니다. 결이에겐 미안하지만 다음 휴일엔 결이와 단 둘이 데이트 하면 되겠지요.



D-day는 정해졌으니 무얼 할까 고민합니다. 웅이가 많이 웃을 수 있는 하루를 선물하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웅이에게 '친구들은 주말에 뭐했대?' 물어봤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어린이집에서 주말에 한 일을 이야기하거든요. 웅이는 친구 OO가 폴리 뮤지컬을 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친구는 터닝메카드도 뮤지컬로 봤었다고 자랑했다네요. "난 TV에서만 봤는데 폴리가 진짜 나와서 노래도 부른대"  


주말이면 온가족이 함께 외출하다보니 웅이는 극장이나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4살이면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도 많이 보던데 웅이는 동생이 있어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웅이와 어린이용 뮤지컬을 봐야겠습니다.


웅이 결이가 잠들고 뮤지컬 구름빵을 예매했습니다. 아기띠에 안겨있던 녀석은 이제 두 발로 걷고 뛰어 소극장까지 가서 의자에 의젓하게 앉아 공연을 보겠죠. 웅이가 좋아하는 솜사탕도 하나 사주렵니다. 엄마처럼 크면 커피를 마시겠다는 녀석이니 커피숍에 가서 마주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도 많이 해야죠. 집에 돌아오는 길엔 업어줄 생각입니다. 엄마한테 업어달라고 두 팔 벌렸다가 이미 결이가 차지하고 있으면 슬쩍 팔을 내리는 속 깊은 5살이거든요.


분명 웅이를 위한 하루인데, 제가 더 설레입니다 (남편에겐 비밀이지만) 꼭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처럼 마음이 둥둥 떠다닙니다. 부모는 평생 자식과 연애하며 산다더니,     그 말이 맞습니다.


엄마와의 첫 데이트, 웅이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데이트가 끝나면, 웅이가 애프터 신청을 할까요?. 물론 애프터 신청에는 튕기지 않을 겁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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