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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05. 2016

워킹맘, 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잠 잘 시간도 부족한데 글은 왜 써요?"


회사 동료가 묻습니다. 어제 밤에도 새벽까지 '재택야근'한 티가 나나 봅니다. 글 쓸 시간에 10분이라도 더 자는게 낫지 않냐는 걱정어린 충고입니다.


왜?


글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평범하디 평범한, 지난 겨울 부츠를 맞추러 간 구두가게에서조차 종아리 치수를 재더니 '잴 것도 없이 딱 대한민국 여성 평균 발크기에 평균 두께의 종아리'라고 인정받은 '대한민국 평균 30대 중반 여성'이 아이 키우면서 일 하는 이야기가 무슨 특별한 일이라고 글까지 올릴까요.



평균이어서, 평범하고 흔한 엄마라서 글을 씁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아도, 특별한 사명감에 불타지 않아도 엄마가 되고, 일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을 때 이제 엄마가 되면 회사엔 사표를 내야겠지, 생각했었습니다.


'대한민국 여성1호'들의 인터뷰를 읽을 때면 '진짜 독하다. 저렇게 살아야 여성1호가 되나봐' 혀를 내둘렀거든요.


직장에 다닐 때 셋째아들 임신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출산 당일까지 일했고, 도봉산으로 단체산행을 가던 날 등산로 초입에서 산통을 느껴 병원으로 직행했다.(이혜훈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해야 할 업무가 있으면 출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직업이 바로 경찰이다. 범죄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주말에 현장 지문 등 감식이 들어오면 경찰청 사무실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아이들은 사무실 구석이나 복도에서 동화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절단된 신원 미상의 손가락 증거물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보게 됐지만, 이를 일부러 숨기지는 않았다. 사실 책상 주변을 치울 여유도 없었다.(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운동과 영어 공부를 하고 7시 반에 회사 업무를 시작한다. 아이를 부산 시댁에 맡기고 한 달에 한 번씩 보러 갔다. 학기 초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주변 식당과 분식점, 학원, 서점 등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했다. 인사 끝에는 “이 아이가 찾아오면 먹을 것을 주거나 필요한 책을 주시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퇴근길에 계산을 하곤 했다.(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에요. 보통 새벽 5시쯤 일어나는데, 출근하기 전까지 하루 업무의 반을 끝낸다는 마음으로 생활합니다.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고 지난 밤 사이 들어온 이메일, 문자, 메신저 등을 체크한 후 답장을 보내죠. 그리고 엄마 역할을 해요.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아침 시간은 전쟁이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아침, 저녁밥만큼은 꼭 챙기죠(김은영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난 못하겠다' 싶었습니다. '한 여성의 직장생활은 온 우주가 나서야 가능하다(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는데 직장생활을 위해 나서 줄 우주가 저에겐 없었습니다. 친정에도 시댁에도 기댈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린이집에 맡기기도 싫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회사의 선배 워킹맘들, 지역 카페의 선배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엄마들은 힘들지만, 우는 날이 많다지만, 그래도 해내고 있었습니다.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는 "우리 사회가 워킹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 말고는 없었다"라고 했지만, 주변의 워킹맘들은 독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일도 가정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평범하지만 해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포기하기 싫어도 포기해야 하는 건 있습니다. 보통의 워킹맘은 새벽에 일어나 아침전쟁을 준비하고, 때론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지요. 칼퇴근을 하려고 애쓰고 아이들이 잠들면 재택야근하는 날도 많습니다. 역할이 늘어나며 해야 할 일도 늘어나는데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라 항상 시간부족에 시달립니다. 시간빈곤층에 관한 연구의 단골 연구대상은 워킹맘입니다.


하지만

부지런하되 시간에 쫓기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하되 독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아니라 할 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니까 하지'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음과 달리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꾸 이를 악 물게 되지만, 그래서 이를 악 물지 않으려고 노력 합니다.

열심과 독함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만, 열심에 머무르려고 노력할 겁니다.


워킹맘이라는 역할은 평범한 저를 48시간 동안 3시간 자면서 일하고, 그날 동물원에도 가는 '독종'으로 변하게 만들었지만, 조금씩 덜 독하게, 결국엔 평범한, 워킹맘이 되려고 합니다. 독해지지 않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워킹맘이 되어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복직을 앞두고 망설이고 있다면, '나를 봐. 평범해도, 독하지 않아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고, 나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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