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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22. 2016

오늘 하루, 엄마 스위치를 내립니다.

휴가 마지막 날

이번주는 휴가 였습니다.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웅이 어린이집 하원 마중도 직접 나가고, 결이 세끼도 챙겼지요. 그리고 오늘은 휴가 마지막 날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 웅이 결이와 놀이터에 가거나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제 밤, 대학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휴가라며? 오랜만에 얼굴 볼까?"


매번 핑계를 댔었습니다. 핑계도 없으면 '아이들 데리고 만나도 될까?' '우리집으로 올래?' 물었었습니다. 친구는 미혼인데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친구를 만나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대학시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는 이제 더이상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친구랑 있어도 떼어 놓고 온 아이들이 생각나서 마냥 즐거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3년 전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만나고 싶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고, 우리집도 아닌 곳에서 친구랑 둘이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잠깐 고민하다 "그러자. 어디서 볼까?" 답을 했습니다.


잠든 아이들 보며 찔리다가 '아이들하고 놀다가 오후에 잠깐 만나고 오면 되지 뭘' 숨 한 번 크게 쉬고 씻으러 욕실에 갑니다.


거울 속 나를 보니 앞머리가 눈을 찌릅니다. 퍼머는 풀린지 오래입니다. 언제 미용실에 갔더라? 기억해보니 복직하기 전날이었네요. 지난해 11월 중순에 복직했으니 다섯 달이 지났습니다. 미용실에도 가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엄마 휴가'를 냈습니다. '휴가원 상신자도 '나'이고 결제자도 '나'이지요. 결제를 하며 '웅이를 낳고 5년째 열심히 엄마로 살았으니 휴가 하루쯤 써도 된다 수고했다' 스스로에게 메모도 남겼습니다.


아침 일찍 혼자 집을 나섰습니다. 회사에 늦지 않으려고 뛰지 않아도 됩니다. 혼자이니 노래를 들어볼까요.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 뮤직앱을 실행합니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이런.. 잊었네요. 뮤직앱은 동요만 놓어놨지요. 집에 TV가 없으니 가요 프로그램 볼 일도 없습니다. 딱히 생각나는 가요가 없습니다. 최신인기가요 100곡을 무작위 실행합니다.


커피숍이 보이네요. 잠을 깨려고 들이붓는 커피가 아닌 여유를 즐기기 위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샀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단골 미용실에 왔습니다. 대학 시절 처음 염색을 해줬던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은 이제 아줌마가 되어 동네에서 개인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10년이 넘는 단골이다보니 수다 떨기도 좋습니다.


또 무얼할까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애들 좀 크면 해야지' 미뤘던 일이 많은데 막상 혼자가 되니 기억나질 않습니다.


아이들 생각도 계속 납니다. 이번 주는 휴가여서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 회사 안 가?" 재차 확인하는 웅이, 눈만 마주쳐도 '엄마!'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결이. '엄마 스위치'는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엄마가 되니 '나'를 유지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볼 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도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도 내 이름이 아닌 웅이 엄마, 결이 엄마로 불립니다. 백화점에 가도 여성복 코너가 아닌 아동복 코너에 가장 먼저 갑니다. '나'를 뒷전으로 미루는 게 '나'를 챙기는 것 보다 쉬웠습니다.


지금 이렇게 혼자 미용실에 앉아 있는 게 마냥 신나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도 걸리고 집안일도 생각납니다. '엄마 스위치'는 꺼도 꺼도 자꾸만 켜집니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즐거운 한 때를 미루고 택한 휴가이니 최대한 즐겨야 합니다. 그게 오늘 제가 할 일입니다.


할 일을 앞에 두고 웅이가 몸을 비비 꼴 때마다 "네 일이야. 그러니 최선을 다하렴" 이야기 합니다. 자, 이제 머리도 끝나갑니다. 남은 휴가를 최선을 다해 즐기겠습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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