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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24. 2016

"엄마 회사 계속 다녀도 괜찮겠니?"

지난주 휴가는 시댁 식구들과 함께 갔습니다. 시어머니, 형님, 시조카. 그리고 우리 네 가족. 삼대가 움직였지요. 명절에나 길~게 얼굴 보던 식구들이 3박 5일간 한 집에서 지냈습니다.


저는 회사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노트북을 들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하며 가장 먼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묻고, 짐을 풀자마자 노트북을 켜는 저를 보며 형님은 자주 어깨를 토닥여 주셨습니다. 형님도 얼마 전까지 '워킹맘'이었거든요. 여행까지 노트북을 들고 온 게 죄송했는데 형님은 오히려 "힘들지. 지금이 가장 힘들 때야"라며 걱정을 해주셨습니다.


아마 여행 둘째 날이었을 겁니다. 아침을 먹자마자 아이들과 바닷가에 갔죠. 아이들은 모래놀이 삼매경. 새벽까지 일한 피로가 몰려옵니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봤습니다. 형님도 곁에 앉았습니다.



"웅이 결이 진짜 개구쟁이다. 구김살이 전혀 없어. 저것 봐. 처음 보는 아이들인데 같이 놀고 있어."

"아이들이 다 그렇죠. 놀이터에선 모두 친구잖아요."

"그렇지도 않아.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른 걸. 우리 OO는 새로운 걸 정말 싫어해. 익숙해져야 시도할 생각하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않는 편이야."


올해 9살인 시조카는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합니다. 형님은 지난해 시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하며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낯가림이 심한 시조카가 낯선 동네에서 처음 단체생활을 시작하며 받을 스트레스가 뻔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친구를 찾는 편이 아니니 형님이 나서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들고 같이 놀이터에 나갔습니다.


형님은 "회사를 그만두고 억지로라도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니까 OO가 좀 달라지는 것 같다"며 "회사를 그만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옳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도 저에게 "올케는 직장 오래 다녀도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직장 오래 다녀도 될 것 같다?? 무슨 뜻일까요.


"며칠간 웅이 결이 보니까 그래. 적응도 잘 하고 아무나 잘 따르고. 결이는 이제 20개월인데 내 손도 잘 잡고 다니잖아. 웅이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정되어 있어."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웅이가 갑자기 손톱을 뜯을 때, 결이가 물건을 집어던지며 울 때. '내가 워킹맘이어서 그런가, 복직하지 말았어야 했나' 생각합니다. 엄마아빠가 휴가여서 일주일동안 회사에 가지 않는다니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웅이를 보며 잔뜩 미안했던 참입니다. 그래서 형님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그동안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을까, 흔들릴 때마다 꺼내 읽은 서천석 선생님의 글 '직장 맘 육아, 너무 걱정은 마세요' 도 생각납니다.


"아이들 중 열 명에 여섯 명은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열 명 중 다섯 명은 누가 키워도, 나쁜 짓만 아이에게 안 하면, 잘 자란다. 능력이야 각자 차이가 나겠지만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원만하게 적응한다. 이런 아이만 키워본 부모들은 애 키우는 것이 어렵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 열 명 중 한 명은 누가 키워도 힘든 아이이다. 대단한 고수나 철저히 준비한 부모가 키우지 않는 한 (물론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보이고 부모를 힘들게 한다. 결국 누가 키우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 아이는 나머지 네 명뿐이다. 잘 키우고, 정성을 들이면 조금 나은 아이들이다."


결국 열 명 중 네 명만 엄마 하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도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엄마의 성격이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일에서 빠른 성취감을 느끼기를 원하는 경우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는 아이와의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성과를 내기 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아이 시험이나 공부 진도에 과하게 매달려 아이와 관계도 나빠지고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엄마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열 명 중 네 명도 엄마가 '엉뚱한 육아'를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천석 선생님은 "오히려 원칙을 지키는 직장 맘이 더 나은 대안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웅이 결이는 열 명 중 다섯 명에 속합니다. 밝고 장난 잘 치고 가끔은 말도 안 듣고 떼도 잘 쓰는, 딱 아이다운 아이들입니다. 예민하긴 하지만 까칠하진 않고, 뾰족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둥글둥글합니다.


그래서 형님의 "올케는 직장 오래 다녀도 될 것 같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웅이 결이는 '누가 키워도, 나쁜 짓만 안 하면, 잘 자라는' 성향이니까요. 웅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도, 웅이 결이를 돌봐주시는 베이비시터 이모님도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을 테니 (그런 곳으로, 그런 분으로 선택했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니 엄마의 '촉'은 똑바로 세우고 있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시조카가 처음으로 제 손을 잡았습니다. 한 번은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습니다.


"OO는 엄마가 집에 있으니 좋아?"

"..."


대답은 하지 않고 씩 웃기만 하네요. 아직 조카의 속마음까진 모르겠지만, 일단 같이 웃었습니다. 웅이 결이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엄마 회사 계속 다녀도 괜찮겠어?"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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