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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03. 2016

가사분담을 하지 않겠습니다

워킹맘 시간관리 part.4

지난 주엔 몸이 좀 아팠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 일주일간 오르내렸고, 이런 증상은 세 달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이번엔 그냥 넘기지 말자며 종합병원 진료의뢰서를 써주셨습니다.


큰 용기를 내어 종합병원에 갔습니다. 큰 병이면 어쩌지 걱정 반,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 반이었지만 종합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다만, 어린 아이가 둘이고 회사에 다니는 상황 자체가 원인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충분히 쉬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면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바이러스에 쉽게 공격당하는 것 같다고요. 우선 몸관리부터 하면서 지켜보자고 하십니다.


고군분투, 참 싫어하는 말인데, '에이, 안 힘들어요' 웃고 있는데 마음과 달리 몸은 고군분투 중 인가. 씁쓸합니다.


걱정할까봐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푸념하듯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할 말이 없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깨를 토닥이며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어서 자라고 하네요.  


다음 날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 거실에 나갔습니다. 어? 어제 밤 내가 본 그 거실이 아닙니다. 웅이가 가지고 놀던 기차레일도 결이가 던지고 놀던 공도 없습니다. 장난감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습니다. 건조대에 빨래도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보니 각잡기를 흉내 낸 수건이 가득합니다. '고마운 범인'은 남편입니다.


집정리 및 빨래, 청소는 제 담당. 설거지는 남편 담당입니다. 저는 아이들 재우며 같이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지만 남편은 제가 아이들 재울 때 설거지를 합니다.


남편에게 내가 할 일은 내가 할테니 거실이 아무리 난장판이어도 정리하지 말라고 했고, 남편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어제 밤은 달랐습니다. 제가 쉬려면 본인이 더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남편은 지금도 최고의 워킹대디입니다. 한달에 한 두번을 빼고는 칼퇴근하고, 아이들과도 최선을 다해 놀아줍니다. 결이는 엄마인 제가 출근할 때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만 아빠가 출근할 때는 엉엉 웁니다. 남편과 웅이 결이가 노는 걸 보면서 '다음 생에는 내 남편말고 내 아빠가 되어달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가사일도 빠지지 않습니다. 칼퇴근을 하다보니 퇴근 이후에는 가사 육아에 함께 합니다. 30대 맞벌이 남편이 하루평균 1시간 5분을 가사와 육아에 쓴다고 하는데 남편은 3시간을 씁니다. 저는 하루평균 6시간을 쓰죠.


그러니까, 남편의 가사 육아시간은 저의 1/2입니다. 남편의 출근 시간이 빠르다보니 아침 시간 가사와 육아를 저 혼자 담당하지만 불만은 없습니다. 남편은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몸 상태라면 복직 6개월만에 백기를 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진국에서 워킹맘들을 위해 시행한다는 단축근무제, 우리나라 우리회사엔 없습니다. 근무시간탄력제, 없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워킹맘이 누군가에게 SOS를 해야 한다면 남편이 유일합니다.


덴마크는 기혼여성 중 80%가 워킹맘입니다. 80%의 비결은 엄마와 아빠의 동등한 여가시간, 동등한 가사 육아시간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아빠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남편도 덴마크 아빠에 비교하면 평균 미만입니다.



회사에서 가장 이상적인 남편으로 꼽히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선배 역시 맞벌이 부부 이지요.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선배에게 가사를 어떻게 분담하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부부는 가사분담을 하지 않아. 남편 부인, 엄마 아빠 구분도 없어. 그냥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야."


아침밥을 챙겨주지 못해서, 구김 하나 없는 와이셔츠를 준비해주지 못해서, 내조를 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습니다. 좋은 아내가 되지 못 하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선배는 아내인 동시에 동반자이니까, 미안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혼자 가던 길을 둘이 가려 합니다.
기쁘고 행복한 길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길이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여러분의 축복 속에 시작하고자 하오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결혼식 청첩장에 남편이 직접 적은 글귀입니다. 잊고 있었는데, 손 잡고 둘이 가는 길입니다. '남편은 남편이니까 이만큼만 하면 충분해'라는 생각을 지워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라면 남편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한 아내가 된다면, 그게 최고의 아내가 아닐까요.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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