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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Apr 28. 2016

점심시간,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어린이집 번호입니다.


"네, 선생님"

"어머니 혹시 오늘 웅이 점심 먹지 않고 하원하나요?"

"아니요. 정상 하원인데요. 웅이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웅이가 밥 안 먹고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고 해서요. 친구들 밥 먹는데 웅이는 의자에 앉아서 엄마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오늘도 재밌게 놀아. 밤에 보자' '네, 엄마 밤에 봐요!' 인사를 나눴는걸요. 선생님께 웅이와 직접 통화할 수 있냐고 여쭸습니다.



"웅아, 오늘 목요일이지. 엄마도 아빠도 회사에 가는 날이고 웅이는 어린이집에서 밥 먹고 낮잠도 자고 친구들하고 놀고 있으면 이모님이 데리러 가는 날이지?"

"아냐.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잖아."

"엄마는 그렇게 말 한 적 없어. 엄마는 회사에 있고, 지금 웅이한테 갈 수 없어. 웅이 밥 먹어야지."


대답이 없습니다. 일그러진 얼굴이,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보입니다.


"웅아.... 웅아..... 엄마 말 듣고 있지? 밥 먹어야 해. 배고프잖아"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전화를 받으시네요. 웅이에게 잘 설명하겠다고, 전화 끊자고 하십니다.


아침에도 잘 헤어졌는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 쓰지도 않았는데, 보통의 평범한 하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을까요. 기억을 더듬어 실마리라도 찾고 싶은데, 동료가 옆에 있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낫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전화 받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자 후배입니다. 네 맞습니다. 일,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웅이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세요?"


가고 싶습니다. 점심시간이니 택시타고 가서 웅이를 보고 다시 회사에 돌아올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아니. 가면 안되요. 지금 내가 가면 웅이는 좋아하겠지.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밥 안 먹고 기다리면 엄마가 오는구나, 생각하게 될 지도 몰라. 밥 안 먹고 엄마를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아야 밥을 먹을꺼야."


웅이는 결국 밥을 먹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떼를 쓰고, 혼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엄마를 원망하겠죠. 그런데 그건 웅이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미안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웅이가 계속 생각납니다. 후배 말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웅이에겐 밥 먹고 낮잠도 자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라고 해놓고, 정작 저는 넋 놓고 있네요. 반칙입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

눈물이 납니다. 하필 친한 선배에게 그 꼴을 들켰습니다. 급하게 괜찮은 척 합니다.


"넌 지금도 넘치게 힘내고 있어서, 힘내라고도 못하겠다."


엄마는 강하다고 합니다. 지금 나는 강한 겁니까 독한 겁니까.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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