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어린이집 번호입니다.
"네, 선생님"
"어머니 혹시 오늘 웅이 점심 먹지 않고 하원하나요?"
"아니요. 정상 하원인데요. 웅이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웅이가 밥 안 먹고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오기로 했다고 해서요. 친구들 밥 먹는데 웅이는 의자에 앉아서 엄마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며 '오늘도 재밌게 놀아. 밤에 보자' '네, 엄마 밤에 봐요!' 인사를 나눴는걸요. 선생님께 웅이와 직접 통화할 수 있냐고 여쭸습니다.
"웅아, 오늘 목요일이지. 엄마도 아빠도 회사에 가는 날이고 웅이는 어린이집에서 밥 먹고 낮잠도 자고 친구들하고 놀고 있으면 이모님이 데리러 가는 날이지?"
"아냐.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잖아."
"엄마는 그렇게 말 한 적 없어. 엄마는 회사에 있고, 지금 웅이한테 갈 수 없어. 웅이 밥 먹어야지."
대답이 없습니다. 일그러진 얼굴이,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보입니다.
"웅아.... 웅아..... 엄마 말 듣고 있지? 밥 먹어야 해. 배고프잖아"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전화를 받으시네요. 웅이에게 잘 설명하겠다고, 전화 끊자고 하십니다.
아침에도 잘 헤어졌는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 쓰지도 않았는데, 보통의 평범한 하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을까요. 기억을 더듬어 실마리라도 찾고 싶은데, 동료가 옆에 있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낫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전화 받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자 후배입니다. 네 맞습니다. 일,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웅이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니세요?"
가고 싶습니다. 점심시간이니 택시타고 가서 웅이를 보고 다시 회사에 돌아올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아니. 가면 안되요. 지금 내가 가면 웅이는 좋아하겠지.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밥 안 먹고 기다리면 엄마가 오는구나, 생각하게 될 지도 몰라. 밥 안 먹고 엄마를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아야 밥을 먹을꺼야."
웅이는 결국 밥을 먹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떼를 쓰고, 혼이 났을 수도 있습니다. 엄마를 원망하겠죠. 그런데 그건 웅이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미안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웅이가 계속 생각납니다. 후배 말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웅이에겐 밥 먹고 낮잠도 자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라고 해놓고, 정작 저는 넋 놓고 있네요. 반칙입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
눈물이 납니다. 하필 친한 선배에게 그 꼴을 들켰습니다. 급하게 괜찮은 척 합니다.
"넌 지금도 넘치게 힘내고 있어서, 힘내라고도 못하겠다."
엄마는 강하다고 합니다. 지금 나는 강한 겁니까 독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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