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틈이 Apr 27. 2016

"우리 집엔 우렁각시가 없단다"

"웅이 잘 자요"

"네. 아빠도 설거지 잘 하고 주무세요~"


그렇죠. 웅이 결이가 잠들면 남편은 설거지를 합니다. 그런데 기분이 묘합니다. '팥쥐' 웅이가 '콩쥐' 아빠에게 '넌 설거지를 다 해야 잠을 잘 수 있어!' 하는 느낌이랄까요.


"웅아. 이제 잘 시간이에요. 장난감 정리하자."

...

"웅아~"

...

"웅아!"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눈 앞에 가서 "엄마가 뭐라고 했지?" 물어도 블럭 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지르는 게 아이의 일이지. 정리까지 하면 어른이게'

'잘 놀고 있을 때 정리하라고 하면 아이의 창의력이 망가진다잖아. 그냥 놀게 두자'


정리는 아이들이 잠든 뒤로 미룹니다. 우리 부부의 육아 원칙 하나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집중하기'에 따르면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집안일도 가급적 아이들이 잠든 뒤에 하니까요.


그런데 가끔 우리가 잘 하고 있는 건가? 갸우뚱합니다.


일찍 자고 싶어 설거지를 일찍 하면 웅이가 '엄마 설거지는 나 자면 하는 거잖아요. 이리 와서 놀아요' 할 때나 '엄마 내 로봇 자동차 못 봤어요?' 매번 장난감이 어딨는지 물을 때 말입니다. 장난감을 찾아주면 웅이는 정말 신기하다는 듯 '누가 여기다 뒀어요?' 묻습니다.




웅이는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결혼을 하기 전 엄마와 거실에 누워 라디오 '여성시대'를 듣곤 했습니다. 아침 집안일을 끝낸 엄마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죠. 엄마가 바닥에 누우면 엄마 팔을 베고 누웠습니다. 라디오에선 엄마들의 다양한 사연이 흘러나왔습니다.


생선을 먹을 때 항상 자식들에게 살을 발라주고 머리를 먹었다는 엄마. 어느 날 소풍을 갔는데 자식이 엄마 도시락을 싸줬고, 도시락 반찬으로 생선 머리만 있었다는 이야기. 자식들 생각해서 항상 생선 머리만 먹었더니 자식은 엄마가 진짜 생선 머리를 좋아해서 먹는 줄 알더라는 믿기 힘든 사연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러셨습니다. 음식 앞에서 모든 부모가 그럴 꺼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이 젓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되면 살을 발라주는 것보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법을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보고 '엄마가 되어도 머리만 먹지 말고 살도 먹어라'고 하셨죠. 아이에게 '당연한 부모'가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웅이가 갸우뚱합니다. 지금 우리 부부는 웅이와 잘 놀아주는 부모가 되느라 집안일의 고단함, 필요성은 가르쳐주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해서요.


식사를 하려면 누군가는 메뉴를 고르고 재료를 사고, 요리를 하고.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도 해야 하죠. 밥 한 끼에 담긴 고마운 노동을 웅이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올해 5살인 웅이는 엄마아빠가 '고마운 노동'을 하는 동안 혼자 놀거나, 노동을 같이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결이가 웅이만큼만 크면 좀 편해질꺼야'


자주 듣는 말입니다. 네, 몸은 그럴 것 같습니다. 이제 만20개월인 결이를 보면 '언제 웅이만큼 키우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결이가 웅이만큼 크면 몸은 덜 힘들겠지만 마음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요. 마냥 안아주고 마냥 사랑해주면 됐는데, 웅이가 5살이 되니 예의 개념 사람됨을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수시로 자문해야 합니다.


이제 웅이에게 세상에 '우렁각시'는 없다는 걸, 엄마아빠가 항상 '우렁각시'가 될 수는 없다는 걸 가르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참,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이 친정부모님을, 시부모님을 우렁각시로 생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내가 좋아 회사가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