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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02. 2016

복직 6개월, 180만원이 생겼습니다.


기다리던 문자가 왔습니다. 복직한지 6개월, 이제 육아휴직 사후지급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 사후지급분: 육아휴직기간 동안 매월 통상임금의 100분의 40을 육아휴직급여로 지급하고(상한액:월100만원, 하한액:월50만원), 육아휴직급여액의 중 일부를 직장복귀 6개월 후에 합산하여 일시불로 지급한다.
(육아휴직 시작일이 2015년 7월 1일 이전일 경우 100분의15, 2015년 7월 1일 이후일 경우 100분의25로 규정)


저는 육아휴직을 2015년 7월 1일 이전에 시작했고, 12개월을 모두 썼으니  (육아휴직급여 100분의15)X12= 180만원을 수령하게 됩니다. 이 제도는 육아휴직이 종료된 후 직장 복귀율을 높이기 위해 2011년 도입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100분의15를 사후지급하다가 2015년 100분의25를 사후지급하는 것으로 상향 조정되었죠.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의 직장 유지율:  당해연도 육아휴직자가 육아휴직 종료 1년후 동일사업장에 있는 근로자의 비율


육아휴직 사후지급분이 정부의 의도대로 복직에 영향을 주었냐고 묻는다면 제 답은 '글쎄요'입니다. 육아휴직 종료를 앞두고 복직을 고민할 때, '사후지급분을 받아야겠어! 복직하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복직한 지 6개월이 다가오자 수령일이 기대되긴 했습니다.


180만원. 큰 돈이니까요. 힘들었을텐데 수고했어, 보너스를 받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이 돈을 잘~ 쓰고 싶습니다. 보통 고정수입 외의 수입이 생기면 일단 통장에 비상금으로 넣어놓고 야금야금 쓰곤 했지만 이 돈은 꼭! 쓰고 싶습니다.


180만원인데, 돈이 이~만큼 생긴 기분입니다.


틈만 나면 생각합니다. 큰 돈이 들어 엄두내지 못 한 일들을 떠올립니다. '가방? 목걸이? 아 그게 좋겠다!'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꼭 필요하진 않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육아휴직이니 180만원을 다시 받을 일 없습니다. 그래서 훈장처럼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일에 쓰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요.


지역카페에 물어봤습니다. "180만원이 생기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만원 한 장 쓰면서도 이리재고 저리재는 주부들에겐 항상 ‘여윳돈 생기면 해야지’ 위시리스트가 있습니다.


“가방이요! 손바닥만한 미니가방사세요”

“얼굴 업데이트요. 잡티 확 벗기면 속이 시원하겠네요.”

“현금으로 찾아서 일단 품에 안아보세요.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짜릿합니다. 남편에게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보 나, 복직한 지 6개월 됐잖아.”

“응. 그런데?”


사후지급액이 나오는 걸 모르는 눈치입니다. 이야기할까? ‘나 180만원 받는다!’ 커밍아웃하면 기쁨은 두 배가 되겠지? 하지만 180만원을 나눠써야겠지, 저금하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음... 곤란합니다.  


“그냥, 6개월 동안 마누라 내조 잘 해줘서 고맙다고” 얼버무립니다. 얼버무렸는데, 말하고 나니 남편의 '내조'가 떠오릅니다. 제가 출근하는 일요일, 결이 재우면서 웅이 책 읽어주던 모습. 제가 야근하는 날이면 아이들 돌보느라 저녁도 먹지 못했다며 늦은 밤 라면을 끓이던 모습. 그래도 불평 한 번 한 적 없는 듬직한 남자.


180만원이 '6개월간 힘들었지, 수고했어'의 의미라면, 남편도 저와 동등하게 누려야 합니다. 커밍아웃 해야겠습니다.



웅이 결이도 수고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는 다시는 회사에 가지 않겠다고 웅이에게 약속했었습니다. 그랬던 엄마는 어느 날 일곱 밤 자면 웅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엄마는 회사에 갈 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회사에 갔다가 아빠처럼 웅이가 저녁먹을 시간이 되면 집에 올꺼라고 했습니다. 많이 울었지만, 엄마를 이해해 준 웅이입니다. 수고했습니다.


낯선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이틀 만났는데, 아침마다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갑니다. 하루 24시간, 내 몸같이 붙어있던 엄마는 낯선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놀고 자고 먹고 싸고, 해가 질 무렵 돌아옵니다. 결이에게 쉽지 않았을텐데 이제 결이는 엄마의 출근인사에 배꼽인사로 답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웅이 결이도 남편과 저와 동등하게 누려야 합니다.


생각해보니 복직 6개월, 수고한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복직 초기 웅이 결이가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적응할 때 지하철로 1시간 거리를 왕복해주신 시어머니, 손주들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시며 반찬이라도 해주시겠다는 친정엄마. 15개월에 처음 엄마와 떨어진 조카가 안쓰럽다고 자기 자식 학교, 어린이집에 보내고 동생 집에 와서 조카와 놀아주는 친언니.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은, 표현해야 합니다.


가방. 목걸이. 얼굴 업데이트. 모두 다시 '위시리스트'에 넣었습니다.


남편 웅이 결이 시어머니 친정엄마 언니 베이비시터 이모님 앞으로 봉투를 마련했습니다. 제 통장에도 조금 넣었습니다. 180만원으로 무얼할까 행복한 고민이었는데, 마음이 허전하긴 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했다,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엄마는 아닌 6개월이었다.
내가 원하는 직장인도 아닌 6개월이었다.
하지만 일과 가정을 병행하려면 지금 이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 모습을 내가 원하는 워킹맘이라고 생각하자.


복직 6개월이 되던 날 아침,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일기입니다. 남편이 원하는 아내,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 시어머니가 바라는 며느리, 친정엄마가 바라는 딸도 아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해준 도와주신 분들입니다.그러니까 마음이 허전하긴 하지만(^^;) 기꺼이 봉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난 워킹맘이니까, 워킹맘은 '온 우주가 도와야 할 수 있다'니까, (뻔뻔하게도!!) 봉투에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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