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틈이 May 31. 2016

워킹맘, 오늘 점심메뉴는 '여가'입니다

워킹맘 시간관리 Part.5

"점심 약속 있어?"

"네"

"누구랑?"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학 동기가 근처에서 일해요. 가끔 같이 점심 먹어요."


사실 약속 없습니다. 근처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 없습니다.  


6개월 전 복직을 결정하고, 웅이 친구의 엄마를 만났었습니다. '저 복직하게 됐어요' 했을 때 그 엄마는 '이제 따뜻한 커피 마실 수 있겠네요'라며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직한 첫 날. 출근길에 커피 한 잔 들고 자축하고 싶었습니다. 회사 앞.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까지 3분 남았습니다. 커피는 무슨 커피, 엘리베이터 기다릴 여유도 없어 13층까지 뛰어 올라왔습니다.



잠 잘 시간도 부족합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사치라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커피는 하루에도 여러 잔 마시긴 합니다. '여유'가 아닌 '카페인'이 필요하니까요)


그런데 시간에 쫓길수록 여유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곧 간절해졌습니다.


1975년에서 2000년 사이에 엄마들이 ‘혼자 보내는 시간’과 아이가 아니라 ‘성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주당 7시간이나 줄어들었다. 일하는 엄마들의 ‘순수한’ 여가는 더 가파르게 감소했다. 그들의 자유시간은 주당 15시간인데 그중 ‘순수한’ 여가는 고작 9시간에 불과하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예전에는 자기만의 여가였던 소소한 시간들을 모두 희생하고 있다. (타임 푸어, 브리짓 슐트 저 안진이 역 中)


출퇴근 시간이라도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가방에 책을 넣었습니다만, 지하철을 타면 온라인 장보기에 바쁩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드라마를 보려고 했지만, 집안을 정리하고 나면 이미 새벽입니다.


그렇다고 여가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쓱 훑을 정도의 시간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짧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시간이라 무언가를 계획하고 즐길 수는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국 보든 칼리지의 노동경제학자 레이첼 코넬리는 엄마들의 여가는 '순수한' 여가가 아닌 '대기 상태'의 여가라고 말합니다. 소방서에서 호출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아이' 사이렌이 울리면 언제든 기둥을 타고 내려갈 준비를 한 동시에 다음 임무에 대비하는 것. 엄마들은 여가 시간에도 항상 긴장 상태입니다.


여자들의 여가는 늘 파편화돼 있고
여기에 10분, 저기에 20분씩 흩어져 있다.
하나의 활동이 끝나고 다음 활동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
너무 짧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시간.


하루 종일 머리와 몸이 복잡합니다. 한 시간이라도 나 혼자만, 몸과 마음을 비울 시간을 찾아야겠습니다. 파편화되어 있는, 짜투리 시간을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침 준비를 끝내고 아이들을 깨우기 전 멍 때리는 시간 10분, 출근길 30분, 퇴근길 30분, 오후 4-5시 사이 출출해지면 과자 한 봉지 먹는 시간 10분.  



합치면 1시간 20분이지만, 출퇴근을 동시에 할 수도 없고, 모을 수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시작했습니다.


"점심 먹고 오겠습니다!" 회사를 나오면 무작정 걷습니다. 걷는 걸 좋아하거든요. 삼청동 경복궁 사직공원. 발길 닿는 곳으로 걷다가 30분이 지나면, 뒤로 돌아 방향을 바꿨습니다. 밥은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먹거나 김밥 한 줄을 먹었지요.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기도 하고 커피숍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합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내내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백화점에서 다른 부서의 후배 워킹맘을 만난 적 있습니다. 눈이 마주쳤고 서로 당황했다가, 가벼운 목례를 나누고 모른 척 했습니다. 아마 후배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중이었을 겁니다)


이런 날은 배는 좀 고프지만 마음은 든든합니다. 오늘은 숨 좀 쉬었다, 그런 기분입니다.


물론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업무의 연장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와의 점심'은 일주일에 한 번만 약속합니다. 날짜를 정하고 달력에 '현(사실 저입니다. 가상의 인물이지요)'이라고 표시를 합니다. 업무상 중요한 일이 아니면 웬만하면 지키려고 합니다. '나와의 점심 약속'도 약속이니까요. 약속은 시간 날 때 지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지키는 겁니다.


6월입니다. '현'이 보고싶습니다. 언제 데이트를 할지 달력에 적어야겠습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산후도우미에게 배운 살림노하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