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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05. 2016

'전업맘' 언니와 '워킹맘' 동생

우린 계속 '절친'할 겁니다.

"너 죽었냐?"


죽긴요. 6시간 27분 전에 카톡을 나눴는 걸요.


"왜? 뭔일있어?"

"뭔일 없으니까 연락하지."


심심하면 심심해서 바쁘면 바빠서 연락합니다. 이 세상에서 날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벌거벗고 만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 학창시절, 성적이 떨어졌을 때 엄마아빠 몰래 성적표를 숨겨준 사람. 대학시절 내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 우리 언니입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역 승차장 5-1번과 5-2번 사이에 붙어있는 포스터입니다.


'당신에게도 있나요? 영원한 내편'


문구를 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 아빠 남편이 아닌 두 살 터울의 언니입니다.


자매는 평생 친구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니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러움을 받곤 했습니다.


"언니 있으면 좋아?"

"내가 울언니 시집가기 전까지 언니 팔베고 자던 사람이거든." (항상 팔을 베어 주던 언니는, 결혼 첫 날 밤 형부 팔을 베고 자는 게 어색해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언니가 7살 때 부모님은 언니에게 독방을 꾸며주고 '수면 독립'을 선언하셨습니다. 5살이었던 저는 언니가 엄마아빠 방이 아닌 곳에서 잔다는 말에, 쫄래쫄래 따라나섰습니다. 언니가 수면 독립을 하던 날, 저도 같이 해버렸습니다.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언니한테 팔베개를 해달라고 했고, 우리 둘은 꼭 안고 잤습니다.


그 때부터 쭉 붙어있었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나이어린 제가 일찍 끝나면 언니 교실 앞에서 수업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언니가 많이 늦게 끝나는 날은 동전 100원을 쥐어주며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기억입니다. 당시 언니의 남자친구는 '넌 오늘도 동생하고 집에 갈꺼냐'며 화를 내곤 했습니다.

사춘기가 되자 엄마와 성격이 많이 닮은 언니는 엄마와 자주 싸웠습니다. 싸우면 집을 뛰쳐나가 (갈 곳도 없으면서) 근처 놀이터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네에 앉아있는 언니를 조르고 졸라 집으로 데리고 온 건 저였습니다. 엄마와 언니의 냉전이 길어지면, 어린 마음에 나 자는 사이에 언니가 또 집을 나갈까봐 언니의 속옷, 팬티를 모두 숨겨두고 잠들곤 했습니다.


두 살 터울의 언니는 학창시절 내내 저에겐 '인생 선배'였습니다. 언니가 겪는 일은 조만간 내가 겪을 일이었고 우리 둘은 신기하게도 학창시절 내내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성적도 비슷했습니다. 언니가 슬럼프를 겪었던 시기에 저도 슬럼프를 겪었고 언니가 전교 5등을 했던 시기에 저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언니가 생리를 하면, 나도 조금 더 자라면 생리를 하겠구나.

언니가 중학교에 가서 교복을 입으면, 나도 조금 더 자라면 교복을 입겠구나.

언니가 수능을 보고 대학 원서를 쓸 때면, 나도 조금 더 자라면 원서를 쓰겠구나. 싶었습니다.


언니가 합격한 대학에 저도 합격하고, 같은 전공을 (저의 주전공과 언니의 복수전공이 같았습니다) 공부하며 우린 '선배'를 넘어 '친구'가 됐습니다. 같은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두고 다투고, 같은 교수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언니는 서른이 되던 해, 결혼을 했습니다. (언니 결혼식에서 유일하게 눈물바람한 건 엄마가 아닌 저였습니다 ㅋㅋ) 두 해가 지나 저도 서른이 되던 해 결혼을 했습니다. 언니와 형부가 적극적으로 우리 부부의 신접살림을 차릴 아파트를 알아봤고, 언니 부부의 아파트와 걸어서 5분 거리 아파트를 계약했습니다.



항상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왔던 우리 둘은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길 위에 있습니다.


언니는 첫째를 낳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전업맘이 되었고 저는 복직해 워킹맘이 되었습니다. 제가 복직하기 직전에 언니는 우리집에서 차로 30분 거리 동네로 이사까지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얼굴 볼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출퇴근 시간에 그나마 카톡을 할 수 있는데 언니는 조카들을 학교, 어린이집에 보낸 뒤 여유가 생기죠. 언니가 '넌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냐'고 카톡을 보냈을 때, 저는 회의 중이었습니다.


친구는 많지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친구는 없습니다. 저에겐 언니가 있으니 '절친'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절친' 언니와 뜸해진 게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워킹맘과 전업맘은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다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공통관심사가 줄어드니 대화 소재가 줄어듭니다. 게다가 워킹맘은 전업맘에 대한 부러움과 미련, 후회. 전업맘은 워킹맘에 대한 부러움과 미련, 후회가 있습니다. 그러니 워킹맘은 전업맘을 만나면 마냥 편하진 않습니다. 전업맘인 언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다른 길 위에 있기에 서로를 위안할 수 있는 일은 늘어갑니다.

"언니, 결이는 잘 때 항상 아랫입술을 빨고 자. 애정결핍인가."

"그럴 때 있어. 우리 OO도 그랬는 걸. 내가 그거 못하게 한다고 아랫입술에 식초도 발라봤는데, 소용없더라. 신경 안쓰니까 안하던걸. 전업맘 자식도 그러니 괜한 걱정하지 마."


"사표 괜히 냈나봐. 아이들 어릴 때 옆에 있고 싶어서 사표낸건데 자꾸 화만 내는 것 같아."

"화도 같이 있어야 낼 수 있는거야. 붙어 있어야 화 내고 사과하고 화해할 시간도 있지. 나 봐. 같이 있는 시간이 적으니 화 낼 시간도 없어. 언니 잘 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우린 자매이기에, 결코 변하지 않을 공통 관심사가 있습니다. 부모님이요. 부모가 되니 다시 느끼는 부모님의 사랑, 헌신. 우리의 어린 시절이야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지 소재가 부족하진 않습니다.


아무리 친정이 편해도 아이 낳고 키우다보면 친정보다 내 집이 편해지는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아무리 언니가 편해도 내 남편 내 자식이 더 편한 순간이 온다고도 합니다. 그 순간은 오겠지만 언니는 영원히 내 편이면 좋겠습니다. 저도 영원한 언니편 할테니까요.


#틈틈이의 다음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놀러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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