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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Jun 08. 2016

사장님, 제가 일을 잘 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조금만 봐주세요

"내가 오늘 있잖아 (쩝쩝) 점심시간에 예전에 우리 회사에 다니다가 (아그작아그작) 그만두고 이직한 선배를 만났는데 (냠냠) 그 회사는 아침에 샌드위치를 준다는거 있지? (아그작아그작) 그 회사로 옮기고 3kg이나 쪘대 (냠냠)."

"당신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로. 왜?"

"과자 한 봉지 다 먹고 있잖아."


사실 두 봉지째입니다. 퇴근 길에 편의점에 들어 봉지과자를 샀습니다. 봉지를 확 뜯어서 와구와구 아그작거리면서 먹기.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입니다. 집에 와서는 입맛이 없으니 (당연하지요. 봉지과자를 먹으며 퇴근했으니까요) 저녁을 건너뛰고 아이들이 잠들자 또 봉지과자를 뜯었습니다. 오늘 스트레스는 과자 두 봉지 쯤은 먹어줘야 풀릴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다.


2주 전, 다른 팀에서 사회 네트워크 분석을 해보고 싶은데 협업할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데이터 분석이 제 업무(중 하나)이지만 아직 사회 네트워크 분석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자주 쓰는 분석법은 아니지만 가끔이라도 쓰긴 하니 공부해야겠다 마음은 먹고 있었습니다. 실제 데이터가 있고, 마감 시한이 있으면 공부에 가속도가 붙겠다 싶어서 해보겠다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책도 사고 선행 분석들도 훑어보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책도 한 권 더 사고 아이들이 잠들면 거실에 나가 공부를 합니다. 현충일까지 삼 일 간의 연휴. 낮에는 육아 밤에는 공부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독학의 한계가 느껴지네요. 이 속도면 마감까지 원하는 수준의 분석을 하지 못하겠다는 불안이 커집니다.



그리고 어제 밤. 해보겠다고 우기는 건 과욕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몇 일 날 밤 새우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지난 2주 간 충분히 잠 줄여가며 공부했습니다. 더는 무리입니다. 


여기서 손을 터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입니다. '내일 출근하면 이번 분석은 무리일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 마음 먹었습니다. 출근해서 사내메신저를 켭니다. 담당자와의 대화 창을 열고


'00씨, 네트워크 분석 해봤는데 아무래도...'


으윽.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존심 상합니다. '애엄마한텐 일 맡기는 게 아니야'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지도 몰라 신경쓰입니다. 저 스스로도 '내가 애만 없었어도 쭉 밤 새면서라도 해볼텐데'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난 애엄마이고 (하나도 아니고 둘이요!!) 일 만큼이나 육아도 중요한 내 업무입니다. 이쯤에서 NO 라고 이야기하는 게 현명합니다.


우선 대한민국 워킹맘들이 마음의 부담을 덜어야 해요.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요구가 버거울수록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포기하는 연습을 해야죠.
(김난도, 지금 시작하라. 나답게 살기 中)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잡고 있는 건 몸과 마음이 두루 망가지는 지름길입니다. 

직원이 망가지면 회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직장과 가정를 위해서라도 망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당분간입니다. 지금은 5살 22개월인 아이들은  2년이 지나면 7살 5살, 5년이 지나면 10살 8살이 될 것이고, 저는 10살 8살 아이의 엄마가 될 겁니다. 그 쯤 되면 아이들에게 엄마 에너지는 덜 필요할테고, 그럼 저는 에너지를 직장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몇해 전 외국에서 경제학자 1만명을 대상으로 결혼, 자녀 유무가 업무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성별, 결혼 유무, 자녀가 몇 명인지에 따라 논문 발표 건수가 달라지나를 알아본 것입니다.  


기혼 남성과 미혼 남성은 업무 생산성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남성, 자녀가 1명 혹은 2명, 3명이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여성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있는 여성은 아이가 없는 여성에 비해 생산성이 평균 15~17% 정도 떨어졌습니다. 자녀가 몇 명인지에 따라 차이는 더 벌어졌는데요. 아이가 한 명인 여성은 아이가 없는 여성에 비해 생산성이 9.5% 떨어져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거기에 둘째가 있으면 12.5%, 셋째가 있으면 11% 더 떨어졌습니다. 


아이가 둘 인 경우 첫째 아이에게서 받는 영향 9.5%에 둘째 12.5%를 합쳐 생산성이 22%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셋인 경우는 첫째 9.5%에 둘째 12.5%, 셋째 11%를 합해  33%가 떨어집니다. 


단, 영구적은 아닙니다. 


아이가 10대에 들어서면 엄마의 업무 생산성은 회복됩니다. 

오히려  ‘엄마 보너스’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업무 생산성이 10% 정도 높아집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가 어린 시기에 줄어든 업무 성과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하네요. 또 여성은 임신했을 때 임신 전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출산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미리 메꾸려고 애쓰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 '이번 분석은 무리일 것 같다'고 백기를 든 걸 잘 했다고 위안하려고 합니다. 지금 저는 직장인인 동시에 어린아이의 엄마이고,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저의 주요한 업무이니까요. 회사에 민폐는 아닐까, 눈치는 그만보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살짝 뻔뻔해져볼까 합니다.


사장님, 제가 앞으로 일을 잘 할 예정이거든요.
그러니까 일 잘 할 예정인 저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은 조금 봐 주십시오. (라고 속으로만 외쳤습니다.)



+ 사실, 이 글을 쓴건. 스스로에게 '너는 일 잘 할 예정이니까, 길게 보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참 어렵습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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