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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17. 2016

내 아이의 첫 응가를 놓쳤습니다

드디어 결이가 변기에서 응가를 했어요!!
끙끙 거리기만 했는데 오늘은 시원하게 성공했네요!!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남기신 양육일지를 확인합니다. 오늘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네요. 결이가 변기에서 처음으로 응가를 했다고 합니다.

이제 21개월인 결이가 변기에 응가를 하다니요. "우와!! 결아 진짜 변기에 응가했어? 대단한 걸!!" 결이를 힘껏 안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혼자만 알기엔 아깝습니다. 동네방네 자랑해야지요. 친정엄마께 전화를 합니다.

"엄마 결이가 오늘 변기에서 응가를 했데."
"쬐끄만게 사람이라고 별 걸 다 한다야."
"그러게 말이야. 예뻐 죽겠어."
"힘들어하진 않았고? 많이 쌌어?"
"어?"

... 힘들어했는지 쉽게 쌌는지 모릅니다. 시원하게 많이 쌌는지 토끼똥처럼 조금 쌌는지도 모릅니다. 결이가 변기에서 첫 응가를 할 때 전 회사에 있었으니까요. 이모님이 남기신 양육일지를 통해 전해 들었으니까요.

엄마라면 압니다. 아이의 '첫'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요.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의 주인공 케이트는 워킹맘입니다. 케이트가 출근한 사이 베이비시터는 케이트 아들의 앞머리를 잘라줬고, 그건 케이트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아들의 첫 이발이었다. 케이트는 출근하며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쏟는다)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 순간.
처음으로 뒤집는 순간.
처음으로 목을 가누는 순간.
처음 혼자 서는 순간.
처음 혼자 걷는 순간.

그 첫 순간을 해내기 위해 아이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또 일어나고, 옆에서 지켜 본 사람은 알지요. 그래서 결국 해냈을 때 아이가 얼마나 뿌듯한 표정을 짓는지, 아이가 어떤 마음일지는 그 순간을 같이 한 사람만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첫 순간을 놓쳤습니다.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일은 맞지만,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서 코끝이 시큰합니다.

"엄마 결이가 변기에 응가 했어"가 아닌 "엄마 결이가 변기에 응가 했대"로 자랑을 해야 하니까요.

결이가 변기에 앉았을 때, 같이 끙끙 소리를 내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지만, 그보다 아이의 첫 순간을 놓친 엄마인 내가 안타깝습니다.

우는 결이를 두고 출근하던 어느 날, 앞집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혀를 차시며 "애는 태어나서 3년 동안 평생 할 효도를 다 하는거다. 나중에 속 썩여도 어렸을 때 한 예쁜짓 생각하면서 키우는건데, 그걸 못 보는 네도 참 딱하다" 하셨습니다.

압니다. 워킹맘인 이상 감내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괜찮다는 건 아닙니다. 아까운 건 아까운 겁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워킹맘이라 결이의 첫 응가를 놓친 건, 많이 아깝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놓치게 될까요. 가능한 조금만 놓치고 싶은데 말입니다.


# 틈틈이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 (post.naver.com/zinc81)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문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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