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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17. 2016

엄마 대용품, 독일까 약일까

"엄마!!"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결이와 웅이가 달려'왔었'습니다. 네, 과거형입니다. 요즘엔 웅이만 달려옵니다. 결이는 바쁩니다.

제가 모유수유를 할 때 입었던 긴팔티를 찾느라요. 웅이를 낳고 샀으니 4년 전이네요. 아이를 안을 때는 맨살끼리 닿으면 아이가 아플까봐 여름에도 긴팔을 입었습니다. 4년 내내 긴팔 수유티만 입었죠. 그러니 수유티는 이미 수명을 다 했습니다. 모유수유를 끝내자마자 옷을 버리려고 했지만 결이가 막았습니다.

4년 내내 입은 수유티. 결이 눈엔 이 옷을 입은 엄마가 제일 예쁜가보다.



엄마냄새에 젖냄새까지 나니 좋아하겠지, 단유한 것도 스트레스일텐데 젖냄새가 베인 옷은 두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착'이 점점 심해집니다. 제가 퇴근하면 결이는 하루 종일 끌고 다니던 수유티를 가지고와 어서 입으라고 합니다. 옷을 갈아 입으면 옷자락을 잡고 웃죠. 베이비시터 이모님께 여쭤봤더니 낮에도 종종 수유티를 찾고, 만진다고 하더군요. 아마 수유티가 '엄마 대용품'이 된 것 같습니다.

웅이도 겪은 일입니다.

웅이의 첫 엄마 대용품은 TV였습니다.

우리집 TV는 디지털 액자입니다. 웅이가 태어나고 TV를 없애기로 했고 남편은 TV에 컴퓨터를 연결했습니다. 대기화면으로 우리 가족 사진을 넣었더니 디지털 액자가 되었지요. 웅이는 전원 버튼을 누르면 엄마아빠가 나타났다가 전원 버튼을 또 누르면 사라지는 게 재밌는지 하루에도 여러번 TV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니며 액자를 보는 시간은 더 많아졌습니다.


사실 전 웅이가 사진을 자주 본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출근한 사이 웅이를 보러 온 친정엄마가 알려줘서 알았습니다.

친정엄만 일하러 간 엄마의 빈자리를 엄마 사진이 채우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잘 놀다가도 쪼르르 TV 앞으로 가서 사진을 보고 웃고 뽀뽀도 하고 다시 논다면서요.

시터 이모님께도 여쭤보니 웅이가 자주 TV 속 사진을 보는 게 맞다고 하십니다. 특히 졸릴 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사진을 더 본다고 하시네요.

전문가들은 워킹맘은 아이와 떨어져있는 동안 아이에게 엄마를 대신할 물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반면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특정 물건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초등학생이 되어도 그 물건만 찾는다, 빨래라도 하려면 아이에게 3박4일은 사정해야 한다며 처음부터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저 또한 어렸을 때 토끼인형에 집착했었습니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제 손에는 언제나 토끼인형이 들려있었습니다. 세 살 사진에는 두 귀가 쫑긋했던 토끼가 유치원 사진에는 두 귀가 축 쳐지고 털도 다 눌려서 참 초라해보였습니다. 사진을 보며 나중에 우리 아이한테는 이런 물건 만들어주지 말아야지 했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아이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물건을 만들어 주라고 해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TV 속 엄마 사진을 보며 위안하다니… 스스로 그런 물건을 찾은 것입니다.

사진을 ‘엄마 대용품’으로 삼아도 될까 싶어 슬쩍 걱정이 됩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괜찮답니다. 전문가의 조언처럼 엄마의 체취가 묻은 물건을 아이에게 주고 “엄마가 없어도 이 물건하고 놀다가 엄마가 돌아오면 같이 놀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답니다. 이 때 물건은 엄마 품처럼 보드랍고 부들부들한 게 좋다네요. 이불이나 인형처럼요. 엄마 사진을 넣은 액자로 목걸이를 만들어줘도 좋답니다.

아이가 한 가지 물건에 집착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2,3개 물건을 엄마 대용품으로 만들면 된답니다.

시댁이나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경우 ‘엄마 대용품’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평일에는 시댁이나 친정에서 지내다 주말에만 집으로 데리고 오면 아이에게는 집이 낯선 공간일 수 있는데, ‘엄마 대용품’을 가지고 오면 아이는 이 물건에 의지해 쉽게 적응한다네요. 물론 시댁에 갈 때 다시 가져가야 하고요.


웅이에게 ‘엄마 대용물’은 TV 속 엄마의 사진이었습니다. 5살이 된 웅이는 이제 TV에 엄마 아빠 사진이 나오면 '터닝메카드'를 틀어달라고 조릅니다. (컴퓨터에 연결해 동영상을 보여주거든요)

결이가 낮잠잘 때 손에 꼭 쥐고 자는 '엄마 대용품'은 수유티입니다. 부드럽고 (좀 크긴 하지만) 가지고 다닐 수 있고. 하늘색 노란색 두 개가 있으니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결이도 웅이만큼 자라면 스스로 수유티를 놓겠죠. 미리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퇴근 후 매일 구멍난 수유티를 입는 게 싫을 때도 있습니다. 결이가 하루 종일 끌고 다녔으니 밥풀 생선냄새가 가득하니까요. 그런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그게 결이 냄새이기도 합니다. 제가 밤새 입어 엄마 냄새를 충전하면 결이는 낮동안 끌고 다니며 결이 냄새를 충전합니다. 결이가 잠든 지금 수유티 팔에 얼굴을 묻으니 결이 냄새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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