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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틈이 May 15. 2016

이대로 Go? 여기서 Stop?

복직 6개월을 돌아보다

2015년 11월 17일.

서른 다섯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이지만 생일선물은 모두 거절했습니다.

회사에 복직하는 날이었거든요. 생일보다는 복직이 더 마음쓰였고, 우는 아이들 떼어 놓고 출근하는 첫 날 선물 받기는 염치없었습니다.


"고민은 알겠는데, 일단 복직해서 생각해봐. 아이들이 워킹맘 엄마에게 잘 적응할 수도 있잖아. 해보지도 않고 그만두기엔 네가 너무 아까워."


복직을 2주 앞두고 사표를 들고 회사를 찾았을 때 한 선배가 끝까지 말렸습니다. 복직과 사표 사이를 갈팡질팡하던 저는 설득 당했지요. 그래. 어쩌면 순조로울지도 몰라. 한 달만 해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한 달을 채웠을 때, 불가능한 건 아니네. 6개월까지만 해볼까? 다시 마음 먹었습니다.


이제 그 6개월이 지났습니다.


힘드냐고요? 아니요. 힘들지 않은 게 아니라 견딜 수 있는 역치가 올라갔습니다. 이 정도 힘든 건 힘든 게 아니지. 그런 마음이랄까요. '선배 오늘 컨디션 좋아 보여요'라는 후배의 말에 '응 어제 6시간이나 잤어' 자랑합니다.


(복직하고 맞은 수액만 8번. 몸무게 앞자리도 바뀐걸 보면 쉽지 않은 시간이긴 했나 봅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는데, 한꺼번에 돌이켜보니 징했던 날이 많습니다.


아이들 잠들기 무섭게 거실에 나가 회사 업무를 처리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졸음 쫓으려고 창문 열었다가 감기 걸렸던 일.
회사 일이 바빠 웅이 어린이집 입학식에 가지 못 할 것 같아 웅이도 결석시켜 버린 일.
경복궁으로 소풍가는 길 광화문을 지나며 엄마 회사를 봐서 좋았다는 웅이의 이야기에 괜히 뿌듯했던 일.
웅이가 장난감 안 사줘도 좋으니 회사에 가지 말라고 울던 일.


그래서 6개월을 채운 지금. 생각이 많습니다.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워킹맘 중 30%는 1년이 되기 전에 회사를 그만둔다는데, 나는 30%일까 70%일까.'

'아이가 취학 연령이 될 때까지 경력단절여성이 되지 않았다면, 경제적 이유 외에도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초등입학 의무휴직’을 許하라, 한국일보 2016.3.2)는데, 나는 그만큼 일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나.'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의 주인공은 워킹맘이고 소재는 워킹맘의 일상입니다. '코미디'로 분류되는 영화를 보면서 단 한 번도 웃지 못한 건 주인공의 상황이 저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펀드매니저인 케이트가 가장 많이 한 대사는 '미안해'와 '감사합니다' 입니다. 아이와 남편 앞에선 '미안해'로 대화를 시작하고 회사에서는 '감사합니다'를 달고 삽니다. 집에서는 놓치는 게 많아 미안하고 회사에서는 양해를 구하고 부탁할 일 많아 감사한, 저도 같습니다.


매번 아이들과 남편에게 '내가 더 잘할게 노력할게' 이야기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일이 어긋날 때마다 노력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케이트는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계속 엉망일 거야"라고 이야기합니다.


현실은 그렇습니다. 내가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해도 역부족입니다.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지금도 엉망이고 앞으로도 엉망일 겁니다.


6개월 동안 제가 깨달은 건 두 아이의 엄마로 직장 생활을 하려면 기대치를 낮추고 엉망과 타협해야 한다는 겁니다.


빨래바구니에 가득 쌓인 빨래감을 보면서 '세탁기는 일주일에 한 번만 돌리면 되지. 그게 전기를 절약하는 길이기도 해' 생각하고

건조대에서 속옷을 집어 샤워하러 가면서 '어차피 입을껀데 굳이 접을 필요 없지. 괜찮아' 생각합니다.


아마 사표를 내는 날까지 매순간 '내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할 겁니다. 아이가 아플 땐 사표를 썼다가 아이가 '엄마 화장하니까 예쁘다' 손가락을 추켜세우면 사표를 찢을 겁니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할 때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발걸음이 무거울테고 내가 쓴 보고서가 채택될 때는 짜릿할 겁니다. 지금처럼요. 그래서 이대로 go, 여기서 stop할지 계속 고민하고 흔들릴 겁니다.




복직 2주 전 사표를 말렸던, 그 선배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선배의 만류로 사표를 다시 생각하게 됐고 6개월을 다녔으니 한 턱 냈지요. 선배가 물었습니다. "어때, 할 만 해?"


"할 만 할 때도 있고 못 하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6개월 다니면 계속 다닐지 그만둘지 확신이 설 줄 알았는데 여전히 모르겠네요."
"6개월을 다녀도 6년을 다녀도 답은 안 나올 거야.  그러니 결론 내려고 하지 마. 복직하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야. 막상 일하면 사표내는 것도 어려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짤릴 때까지 다녀!"

워킹맘 6년차인 선배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데, 이제 6개월 된 제가 고민해서 뭐 합니까. 선배 말대로 하루 하루를 소화하는 것 뿐이죠. 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복직 6개월 선물이라며 음악 한 곡을 보내줬습니다. 윤종신의 '지친 하루'입니다.


거기까지라고 누군가 툭 한마디 던지면 그렇지 하고 포기할 것 같아
잘한 거라 토닥이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발걸음은 잠시 쉬고 싶은 걸

하지만 그럴 수 없어 하나뿐인 걸 지금까지 내 꿈은
오늘 이 기분 때문에 모든 걸 되돌릴 수 없어
비교하지 마 상관하지 마 누가 그게 옳은 길이래
옳은 길 따위는 없는 걸 내가 택한 이곳이 나의 길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선배가 그럽니다. "이 길에서 내릴 생각하지 말고, 같이 가자. 고민할 시간 있으면 잠을 더 자고!"


ㅋㅋ 넵. 명쾌하네요. 이대로 Go! 하겠습니다. 그리고 후배 워킹맘들에게 선배같은 선배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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