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이 뭐 하는 덴데?
배낭 여행자들의 블랙홀, 다합
다합은 소위 '배낭여행자들의 블랙홀'로 불린다. 다녀와보니 왜 그렇게 불리는지 백 번 알겠더라.
우선, 물가가 저렴하다. 23년 4월 기준 쉐어하우스 숙박비는 1박당 15000원 수준이고, 지인과 월세로 집을 구하면 더 저렴하게 오래 머물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도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게 배울 수 있다. 나는 스쿠버다이빙은 오픈워터+어드밴스드 자격증 과정(4-5일)을 370유로에 수강했고, 프리다이빙 AIDA 2 코스(3일)는 230유로에 수강했다. 총 600유로, 한화로 약 80만 원에 두 다이빙을 모두 배운 셈이다.
다합은 작은 해변가 마을이다. 따라서 카이로와 같은 이집트의 관광 대도시와는 달리 호객행위가 심하지 않고 매우 평화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루종일 물속에서 다이빙하고, 햇볕 아래 몸을 뉘인 뒤, 저녁에는 쉐어하우스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일상을 며칠 보내고 나면 그 작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길을 걷다 아는 얼굴들을 왕왕 마주한다.
다합에는 나처럼 혼자서 훌쩍 떠나온 여행자들이 많다. 다합은 그런 여행자들이 오고 가며 어울리는 곳이다. 이집트의 작은 마을까지 올 정도니 다들 여행 경력이 짱짱해서, 다양한 여행 경험과 삶의 조각들을 엿볼 수 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다이빙하는 비슷한 일상을 공유한다.
다합에서는 퇴사자도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직장인이 더 특별했다. 퇴사를 하고 편도 비행기만 끊어서 온 2030 여행자들이 정말 많은데, 어느 날은 열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나만 직장인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합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우리가 위험하다고 말할 정도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머물게 되는 곳이었다.
다합 스쿠버다이빙의 장점
1. 다합에는 탄탄한 한국인 다이버 커뮤니티가 있고, 한국인 강사에게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다합에는 아주 탄탄한 한국인 다이버 커뮤니티가 자리 잡고 있다. 23년 5월 기준 현재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이빙에 미치다'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일종의 다합 다이빙 정보방이다. 이 오픈채팅방을 기반으로 동행 구하기는 물론, 김치도 나눔 하고 한국식 빵까지 판매한다.
그래서 한국인 강사분들도 많다. 나는 스쿠버다이빙은 '오르카(ORCA)'에서 배웠는데, 오픈워터부터 어드밴스드 과정까지 아주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셨고, 마지막날 130m 깊이의 블루홀(Blue Hole)과 캐년(Canyon) 등의 유명 다이빙 포인트들도 챙겨주셨다.
독일에서 거주하면서 주로 영어로 액티비티를 배우곤 했던 나로서는, 오랜만에 한국어로 편안하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감지덕지했다.
2. 프리다이빙도 같이 배울 수 있다.
다합 사람들은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전지훈련 왔냐고 하곤 했다. 다합에는 한 달가량 머무는 장기 여행자들이 많은데, 직장인인 나에게 다합에서 허락된 시간은 딱 9일이었다. 액티비티 욕심은 또 많은지라 나는 프리다이빙도 포기하지 못했고, 9일 중에 4일은 스쿠버다이빙하고 3일은 프리다이빙 배우느라 동해 번쩍 서해 번쩍했다.
하지만 두 다이빙은 아주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프리다이빙은 (다음에 다루겠지만) 일종의 멘탈 스포츠다. 수업만 들었다고 해서 모두가 자격증(AIDA)을 따는 것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이퀄 연습과 펀다이빙을 하며 훈련을 해야 한다. 스포츠인만큼 더 재밌기도 하고 실력을 향상하는 맛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짧은 기간 동안 프리다이빙만 하면 예쁜 바닷속 모습을 충분히 보기는 어렵다.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오래 들여다봐야 바닷속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데, 초보자로서 그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바닷속 세계가 너무 궁금했던 나로서는 프리다이빙만 했으면 아쉬웠을 터였다.
반면 스쿠버다이빙은 오픈워터(2일) 때 가르쳐주시는 스킬들을 익히고 나면, 어드밴스드 레벨(2일)에 가서는 바닷속 세상을 편하게 '관광'할 수 있다. 그래서 나처럼 두 다이빙의 매력을 모두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다합은 아주 좋은 곳이다. 다만 수업이 거의 하루종일 이어지고, 모두 수중에서 하는 활동이다 보니 체력소모가 상당하다. 다른 분들은 좀 더 여유 있게 일정 잡으시길!
3. 그 외 더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다합은 다이빙으로만 유명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이 지역은 바람이 좋아 윈드서핑과 카이트서핑으로도 유명하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두 서핑을 하고, 바람이 잔잔하여 바다도 잔잔할 때는 다이빙을 할 수 있어 최고라고 한다.
또 근처에서 ATV도 저렴하게 탈 수 있고(인당 350 EGP, 한화 15,000원 수준), 클라이밍 하기에도 좋다. 다합에 오래 계시는 분들은 시나이산으로 하이킹 다녀오기도 하고, 요르단으로 여행 다녀오기도 한다. 나와 같은 아드레날린 정키(adrenalin junkie)들에겐 최적의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사실, 앞서 소개한 다합의 분위기 그 자체가 최고의 장점이다.
다합 스쿠버다이빙의 단점
1. 큰 생물은 큰 바다에 있다.
다합은 해변 가까이에 깊은 바다가 있고, 다이빙 포인트가 많다. 그래서 보트를 타지 않고 걸어 들어가 스쿠버다이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이빙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에게는 더 적합하다. 오픈워터 때 보트에서 깊은 바다 위로 점프하여 스킬들을 배웠을 걸 생각하면, 나도 더 겁을 먹었을지 모른다. (오픈워터 과정에서는 위급상황을 대비하여 마스크와 공기통을 벗기도 하며 상황을 연출하여 스킬을 익힌다.)
하지만 위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합(Dahab) 앞바다는 큰 바다가 아니다. 진짜 크고 깊은 홍해는 후르가다(Hurghada)와 마르사알람(Marsa Alam) 쪽에 있다. 이곳에서 다이빙 사파리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보트를 타고 바다 안 쪽으로 들어가야 듀공, 돌고래, 상어와 같은 큰 바다생물을 볼 수 있다.
다합에는 작은 수중 생물들과 산호들이 많이 있을 뿐 큰 생물은 없다. 그래서 다합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큰 바다로 함께 여행을 많이 가기도 한다. 내가 이집트를 떠난 후, 같이 다이빙했던 언니들이 마르사 알람에서 듀공을 보고 돌고래와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부러워했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이집트에 돌아갈 결심을 하며 떠나왔다.
2. 다이빙 중 예상치 못한 일도 발생한다.
스쿠버다이빙은 처음엔 조금 낯설지만, 배우는 대로만 하면 어려울 게 없고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정적인 액티비티다. 하지만 간혹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3일 차 수업(어드밴스드 레벨 첫 수업)을 들을 때였다. 이날은 다른 친구들과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강사님과 일대일 수업을 했다. 두 번의 다이빙(소위 2깡)을 하는 날이었다. 첫 다이빙은 즐겁게 하고 돌아왔다. 거북, 문어, 복어, 참치, 라이언 피시, 가오리 등을 봤고, 더 이상 스킬을 익히기보단 바닷속 구경을 시켜주셔서 마냥 재밌었다.
"강사님은 바닷속에서 길을 어떻게 찾으세요?"
나에겐 온 사방이 비슷비슷해 보였는데, 바닷속에서 길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온 게 신기해 강사님께 여쭤보았다. 강사님은 그저 웃으실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사한 지점으로 두 번째 다이빙을 하러 들어갔다. 3일 차인지라 여유가 생겨 손목 위의 나침반과 컴퓨터를 잠깐 만지작 거리고 돌아보는 찰나, 강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버디분리였다.
수심 30m의 바닷속에 나는 혼자 남겨졌다.
스쿠버다이빙할 때 지켜야 하는 기본 원칙
1. 반드시 버디와 함께 다이빙한다.
2. 버디분리 시, 바닷속에서 약 1분간 버디를 수색하고, 이후에는 수면 위로 올라와 만난다.
3. 수면 위로 급하게 상승하지 않는다.
4. 숨을 참지 않는다.
우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첫 수업 때 물속에서 당황하여 숨을 안 쉬었던 경험을 떠올렸고, 스쿠버다이빙할 때는 숨만 잘 쉬면 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기본원칙 4번]. 또 당황하면 공기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프리다이빙 때 배운 멘탈 관리법대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
강사님께서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실 거기 때문에 나는 제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1분 이상이 지났음에도 아무도 찾을 수 없어서, 나는 우선 가고 있던 방향대로 나아가며 수면 위로 천천히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기본원칙 2번, 3번]. (내가 학생이 아니라면 수면 위로 바로 올라가 버디와 만나는 게 더 바람직하다.)
그런데, 바닷속에서 길이 보였다. 불과 전 다이빙까지만 해도 바닷속에서 길을 찾는 강사님을 신기해했는데, 바다에도 지형이 있었다. 손목에 찬 다이빙 컴퓨터를 확인하니 내 예상대로 오르막을 따라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고, 무사히 해변가에 도착했다.
발을 딛고 일어서서 바다 쪽을 둘러보니, 저 멀리 수면 위에 강사님이 보였다. 나를 놓친 강사님도 놀라서 수면 위로 올라갔다 바닷속으로 내렸갔다 하며 나를 계속 찾으셨다고 한다. 강사님께서는 나를 찍어줄 카메라를 잠시 만지던 사이, 그곳 시야가 좋지 않아 서로 놓쳤다며 죄송하다고 하셨고,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이 날 일은 나에게는 재밌는 에피소드로 남았지만, 분명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닷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수업 때 배운 대로 한다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
우주여행 대신 바다여행
내가 아무리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좋아한다고 해도, 우주여행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우주여행과 가장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는 액티비티가 스쿠버다이빙이라고 나는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스쿠버다이빙 할 때, 우리는 BCD 장비(부력조절기)를 활용하여 물속에서 '중성부력' 상태를 유지한다. 즉, 바다 한가운데서 물 위로 떠오르지도, 물아래로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무중력과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드넓은 검파란 공간 속에서 나는 내 몸을 어느 방향으로나 움직이고 뒤집을 수 있다. 앞과 뒤, 좌와 우의 방향만 있는 게 아니라 위와 아래로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 온 사방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까지는 못 가도,
우리가 사는 지구, 그 바닷속까지는 탐험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기술은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