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집으로부터의 탈출
2014년 6월 24일 새벽 1시 20분 비행기였다.
6월 23일에 남자친구와 공항에 도착했다. 가족들의 배웅을 바랄 순 없었다. 아빠는 그때까지도 내가 떠나는 것을 탐탁지 않아하셨고 엄마랑 공항에 간다면 난 대성통곡을 했을 것이기에. 남자친구와 잠시 떨어지는 것도 슬프긴 했지만 설렘이 더 가득했던 때라서 슬픈 감정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체크인 전에 남자친구도 공항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가야 해서 눈물이 조금 나긴 했어도 서로 쿨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 당시 나는 편도 비행기 티켓을 나름 저렴한 외항사의 경유 항공권으로 구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적기 비즈니스 좌석이라도 타면서 몸을 편하게 갔어야 한다는 후회가 남지만 그때는 돈을 아끼는 게 더 중요했다. 짐을 잔뜩 싸가지고 갔지만 수화물 규정에 맞지 않아 짐을 빼야 한다고 해서 승무원과 실랑이를 벌이며 나의 체력은 이미 공항에서 모두 소진되었다. 남자친구는 이미 떠나버리고 없어 하소연 할 수도 없는데 힘들게 정리해서 쌌던 캐리어와 배낭을 모두 해체해 짐을 재정비하고 뺀 짐을 다시 집에 택배로 부쳤다. 집으로 다시 부칠 거 왜 가져왔나 싶고 비행기를 탑승하기도 전부터 짜증과 울분이 솟았다. 우여곡절 끝에 짐을 부치고 나니 체크인 시간도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체크인을 하고 부랴부랴 면세품도 찾으니 또 짐이 엄청 늘어나 있었다. 보부상이 된 느낌이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다. 아 정말 출발하는구나... 그리고는 바로 곯아떨어지면서 졸음이 어떤 우울한, 불안한 생각도 할 수 없게 나의 심신을 차단시켜 버렸다. 여행을 떠나는 거였다면 기내식도 맛있게 먹고 즐기면서 갔을 텐데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에서 깨어 있는 상태에선 기내식도, 간식도 맛이 없었다. 그저 샴페인 한잔 후 다시 잠드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인천-도하-런던의 여정을 가면서 도하에 내려 환승할 때는 또 수많은 짐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비행기에서 배낭을 챙겨 내리는데 나를 등산하러 가는 사람으로 오해하신 분도 있었다. 다행히 보안검색은 무사통과했고 도하에서부터는 정신 차리고 런던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런던에 도착하면 며칠간은 원 없이 관광하고 놀아야지!라고 생각해서 가이드북도 챙겨갔던 나인데 책도 보는 둥 마는 둥,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히드로 공항이 다 와가자 매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에 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다행히 출입국관리소도 별 탈 없이 통과했고 입국장을 나갈 때 인증샷조차 찍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빠져나왔다. 또 저 짐덩이 들을 들고 이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찔했나 보다. 6년 만에 다시 런던에 도착했다. 6월 말 초여름의 날씨였지만 런던은 덥지 않았다. 공항에서부터 절대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찾은 짐들을 꼭 붙들고 갔다. 한국에서 히드로 커넥트를 예약하여 패딩턴으로 타고 갈 예정이라고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했지만 히드로 커넥트 타러 가는 곳을 찾지 못해 히드로 익스프레스를 히드로 커넥트로 착각하고 추가 요금을 낸 것은 돈을 아낀 의미가 사라졌다. 대신 패딩턴엔 매우 빠르게 도착했고 패딩턴에서 숙소가 있는 스위스코티지까지는 영드 셜록에 나올법한 블랙캡을 타고 이동하니 서서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