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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린 Jul 30. 2021

나는 왜 스물아홉에 런던으로 떠나야 했을까

은근한 방랑을 즐기게 된 이야기



 2013년,

 사회초년생의 티가 슬슬 벗어지려고 할 때 슬럼프가 찾아왔다. 퇴사욕구의 슬럼프는 3.6.9(a.k.a 3개월째, 6개월째, 9개월째) 마다 온다고는 하지만 무료한 현실과 턱없이 부족한 급여, 대학생 시절 가장 좋을 때 해외에 장기간 가보지 못한 아쉬움 등등이 동시에 터져나오면서 워킹홀리데이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취준생 시절에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볼까? 고민을 하고 알아본 적은 있었지만 용기가 부족해 선뜻 나서지 못했고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보고 싶다! 는 생각이 다시 들자마자 나는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알아보기 시작했고 영어권 나라들 중 영국과 캐나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으로 가게 되면 유럽을 돌아볼 수 있고, 캐나다를 가게 되면 북미를 함께 돌아볼 수 있을거란 막연한 기대감에!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국은 이미 모집마감이 되었고 캐나다만 남아 있었기에 신청해보았지만 아쉽게도 탈락.


 그렇게 나의 불타오르던 워킹홀리데이 열정도 사그라드는 듯 했다.


  그리고 2014년을 맞이했고 나는 스물아홉이 되었다. 한국에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취직도 한 지 좀 됐고, 남자친구가 있다면 결혼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워킹홀리데이 나이 기준이 만 30세이긴 하지만 스물아홉에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왜?' 라는 말을 들을 법한 도전이었다. 해외여행을 다닌 적은 있지만 장기간 해외를 나간다는건 나에게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기에 많은 고민을 했지만 내 옆에 있던 그 당시 남자친구(현재 남편)는 의외로 나에게 용기를 주며 신청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2014년 1월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게 됐고 2월에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최대 2년 간 해외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여러 절차가 남아있긴 했지만)!


 뭔가 원대한 포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 30이 되기 전, 결혼하기 전에 이걸 안하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20대초중반에 용기가 부족해 하지 못했던 걸 20대후반에 합격 통보를 받고 나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워킹홀리데이라고 하면 꼭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야 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래도 좋았다. 나는 나대로 내 일생일대의 퀘스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스물아홉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엄격한 편이셨기에 집에서 숨막히는 것에서 또한 탈출하고 싶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자취할 수도 있었겠지만, 첫 독립이 영국이라니 뭔가 더 낭만적인 생각도 들고...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야 애틋함도 더 생길거라고 생각했다. 아빠랑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던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고 이 또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하지만 영국을 가야겠다! 라는 생각은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기에 일단 차근차근히 영국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영국의 YMS(Youth Mobility Scheme) 비자를 받는 절차는 당시 직장인이었던 내게 조금은 어려웠다. 평일에 시간을 빼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방문해 결핵검사를 받아야했고, 결핵검사결과지와 비자신청서, 예금잔액증명서 등 서류들을 챙겨 서울 회현역 근처 YMS 비자센터에 방문하여 비자를 신청했다. 이마저도 통과가 안되면 어떡하나 매우 마음을 졸였으나 다행히 내 여권은 비자스티커가 붙여진 채로 내 품에 무사히 돌아왔다.


 비자도 중요했지만 영국 어느 도시를 갈지, 가서 무엇을 할지 초기 계획을 짜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처음엔 런던이 아닌 다른 도시를 갈까 고민했지만 나의 비루한 영어실력에는 어쨌든 이방인이 많은 런던이 그나마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8년에 런던 여행을 며칠 해본적 있는 것 또한 결정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과정을 동경해왔기에 어학원을 잠시 다니기로 결정했고 현지에서 서비스직으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 유럽여행을 틈틈이 하는게 계획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서 xxx를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중요할 수 있지만 나는 내 20대의 마무리를 인생의 큰 경험으로 점찍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나는 2014년 6월, 서울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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