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리나 Feb 09. 2022

키 큰 여자로 사는 건 어떤가요? (인터뷰)

즐겁습니다만?

오늘 필자가 인터뷰할 인물은 바로 키 큰 여자, 카리나.

바로 필자다.



한국에서 키 큰 여자로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난 35년을 살아왔는지 차근차근 인터뷰해보려고 한다. 키 작은 사람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만한 소리도 나올 수 있고, 때로는 다수인 키 작은 여자를 부러워하기도 했었던 '키 큰 여자' 카리나의 인터뷰, 지금 바로 만나보자.



길을 지나다녀도, 새로운 환경에 가도 언제나 듣는 소리가 있죠?

카리나(이하 리나): '키 몇이에요?' 혹은 '키가 언제부터 컸어요?'. 아니면 탄성반 부러움 반 놀라움 반으로 '와 키 진짜 크다'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왔어요. 사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크다고 하면 보통 165~169cm 정도 되잖아요. 근데 저는 그것보다 한참 크고 또 호리호리하게 마른 편이었다 보니 제가 가진 키보다 더 크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여기서 질문, 아마 리나 씨가 앞으로 사는 동안에 함께할 질문이겠죠. 키 몇이에요?

리나: 흐흐흐,, 정확한 키는 항상 어머니께서 밝히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의 키가 자랑스럽기 전까지 저도 정확한 키를 밝히지 말자는 어머니의 신비주의 정책(?)에 동조했었고, 실제로 누군가 조심스럽게 혹은 무례하게 키를 물어보면 줄여서 말하곤 했어요. 지금도 사실 낯선 사람이 다짜고짜 키를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저에 관한 진솔한 인터뷰니 공개하자면, 키는 176-177cm를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조금 더 크고 저녁에는 조금 작아지더라고요.


언제부터 그렇게 컸어요? 키 큰 비결이 있나요?

리나: 이런 말씀드리면 욕을 엄청 먹을 수도 있지만, 저는 키는 유전적인 요인이 더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과거 농구선수 센터 포지션으로 키가 굉장히 크셨고, 어머니도 어머니 연령대에서 늘씬하신 168cm 정도 되세요. 늘씬하고 키 큰 두 분이 만나서 결혼하셨으니, 저도 크고 제 동생도 당연히 키가 클 수밖에 없어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께서도 크세요. 1920-30년도쯤 태어나셨을 텐데, 대령이셨던 친할아버지도 180cm가 훌쩍 넘으셨고, 제 기억에 친할머니께서도 160cm 후반 대였어요. 그래서 유전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친할머니께서는 아기였던 저를 보고 "딱 봐도 리나는 엄청 키가 클 테니, 너무 키 크지 않게 바구니에 넣어서 키워라"라고 장난처럼 말씀하셨데요. 초등학교 때에는 1년에 7~8cm씩 자랐어요. 168cm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키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175cm였고, 고3 때 176cm 더라고요. 키가 갑자기 크다 보니 척추가 그걸 견디지 못해서 자세도 바른 자세 잡기 위해 발레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나 보니 1cm가 더 큰 것 같기도 해요.


그러게요. 키는 후천적인 노력을 가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래서 키 큰 여자를 보면 더 신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리나: 맞아요. 일단 175cm가 넘는 여자를 보는 게 남자 평균 키가 173-4cm인 나라에서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사실 키 큰 여자에 대한 시선이 신기한 것 자체가 저는 불편해요. 다 똑같은 인간인데, 신기해하면 안 된다고 봐요. 신기해하고 다짜고짜 키를 묻고. 이런 건 사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거든요. 그리고 특이하다고 아래위로 시선을 쭉 훑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릴 때는 그런 시선이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뚫어지게, 신기하게 나를 쳐다보나 싶기도 하고. 어딜 가나 키 때문에 튀기 때문에 자라면서 나름 텃세 아닌 텃세들을 많이 받아왔었어요.


키에 대한 텃세요? 어떤 게 있을까요?

리나: 가장 많았던 텃세는 작은 남자애들에게서 많이 받았어요. 저보다 키 작은 남자들 중에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는 먹었는데 정신연령이 어리거나 혹은 원래 성격이 무례하고 예의 바르지 못한 분들은 처음 키 큰 여자를 보자마자 "내 옆에 오지 마세요", "아이씨, 여자가 왜 이렇게 커요?" 하면서 저의 키에 대한 당혹감과 부정적인 감정을 마구 표출해요. 대학교 때 동아리에 갓 가입했을 때도 복학생 선배라고 나이 조금 더 많이 먹은 좀 모자란 사람들이 그래서 솔직히 당황했어요. 좋은 분들, 예의 바른 분들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분들은 애초에 처음부터 키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요. 사실 키도 외모의 일부분인데, 그렇게 지적 아닌 지적, 텃세 아닌 텃세를 당하는 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반대로 제가 "아니, 남자가 왜 이렇게 작아요?"라고 처음 만나자마자 이야기하면 아마 저는 매장당할걸요?


아이고, 세상에 참 무례한 사람들이 많아요. 사람들의 그러한 반응을 평생 들어왔을 텐데, 그런 게 리나 씨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리나: 그럼요. 처음에는 저는 제가 뭔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상한 취급 하니까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기분 나쁘다고 티를 낼 수도 없었어요. 농담이니까요. 농담이라도 외모 지적이니까 기분이 나빴지만 농담으로 받아들이느라 겉으로 하하하 하고 넘기다 보니까 어느새 뭔가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왜 내가 내 키를 부끄러워하고 키가 작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왜 자기 옆에 오리 말라고 했다고 또 순순히 그 말을 내가 들어줄까?' 하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등치가 작고 못난 건 외모 지적질을 하는 그 사람들인데 가해자 피해자라고 나누기는 애매하지만, 아무튼 가해자는 하하호호하고 피해자 아닌 피해자인 저는 구린(?) 기분을 가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사춘기 때는 나는 왜 이렇게 키가 큰 걸까. 왜 보통 사람과 다른 취급을 받는 건지 나름 진지하게 생각했었어요.


특히 사춘기 때 외모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하는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리나: 재미있는 게, 이게 전 세계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커야 한다는 약간의 통념? 같은 게 있더라고요. 게다가 유교국가인 우리나가 기준에서 키 큰 여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남자를 위압적으로 누른다는 그런 느낌, 키가 크기 때문에 기 센 여자다 - 이런 식으로 인식하고 특이하게 취급해서 제압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뭐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일반적으로 대부분 키 큰 여자에 대한 인식은 내가 갖지 못한 걸 갖고 있으니 부러움의 감정이 많아요. 그 부러움의 감정을 한국인은 이상하게 남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표출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걸 깨달으니 괜찮더라고요. 키 작은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러는구나, 그냥 못난 사람들이 부러움의 감정으로 남을 그렇게 말로 공격하는구나. 실제로도 어떤 사람이 저에게 한 번 사과한 적도 있어요. 제 키가 부러워서 그렇게 키 이야기를 했다고.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가기도 하고. '어떤 못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한 것, 열등감을 그렇게 말로 티 내면서 남을 후려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그들이 불쌍하더라고요.


그리고 워낙 살면서 키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들으니 계속 상처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나는 평생 키가 컸고, 앞으로도 키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고. 키가 큰 것은 자랑스러운 나의 일부이며 내 모습이니까 embrace라고 하죠, 나 자신을 껴안아주기로 했어요. 과거에도 앞으로도 아무래도 계속해서 키 크다고 나를 후려치려는 사람들과 마주해야 할 텐데, 내가 나를 껴안아주고 내 키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내가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과정과 유사한 것 같아요.

리나: 맞아요. 조금 더 키 큰 여자인 저의 정체성을 빨리 받아들이고 더 지금처럼 자신감 있게 행동할걸 하고 후회하던 순간도 있었어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23살쯔음 까지는 키 큰 제 자신이 조금 싫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키가 커서 남자를 만나기도 힘들고, 왜 이렇게 사람들은 '카리나'라는 나라는 인간을 안 보고 내 키에 집착하고 그냥 내 정체성을 마음대로 정해버리는 걸까- 하고 상처받았던 게 사실이에요. 이러한 과정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진짜 괜찮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저의 자랑스러운 '큰 키'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키로 사람을 구분한다고요?

리나: 네. 처음 만나자마자 제 키를 무례하기 물어보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평소에도 키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고,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까지 그렇게 표출하는 것 보면 별로 예의 바르거나 배려심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도 맞더라고요. 대학생 때 제가 가만히 그냥 서 있으면 갑자기 점프를 뛰면서 "와! 진짜 크다!" 하면서 무례한 행동을 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속으로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티 내지 않았죠. 다들 그 사람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티 나지 않게 그 사람을 은근슬쩍 피하고 별로 좋게 보지 않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결국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에 지나치는 농담으로 - 그 세 치 혀로 결국 망하더라고요.


반면에 처음 만날 때 그냥 제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 키에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들 좋았어요. 그들은 솔직하게 자기가 키가 작은데 제가 키카 커서 너무 부럽고 좋다고 이야기도 해주고, 앞서 말한 무례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을 하면 대신 화를 내거나 꼽을 주기도 하고ㅋㅋ.. 그랬어요. 일전에 브런치에도 쓴 적이 있었지만, 저는 저의 큰 키 덕분에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제 큰 키에 더 만족해요.


또 어떨때 키 큰게 좋아요?

리나: 아무래도 붐비는 지하철 출근길에서 좀 더 fresh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점? 사실 지하철 공기는 안좋지만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 껴 있을 때 좀 더 천장에 가까운 키다 보니까 체감혼잡도가 조금은 덜해요. 정말 지하철이 헬(hell)일때 다른 여자분들 보면 거의 낯선 사람 품에 딱 붙어 있어서 많이 힘들어보였어요. 안그래도 personal space를 중시하는 사람이라서 키 커서 조금 더 확보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키가 크니까 당연히 팔도 길어요. 그래서 높이 있는 것에도 잘 닿고, 의자나 받침대 없이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잘 꺼내기도 하고. 그리고 다리도 길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앉아있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받침대를 사사던데 저는 그런게 필요 없어요. 옷을 살때도 좋아요. 한 번도 바지를 수선해서 입어본 적 없어요. 오히려 바지 길이가 짧아서 문제였죠. 콘서트 같은데 가도 잘 보여서 좋고. 이런 소소한 것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요.. 그냥 어딜가나 눈에 띄니까 그걸 즐기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좀 주변을 잘 못보는 스타일이라서 친구들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가끔씩 쳐다본다는 것을. 항상 주목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나타나면 항상 '아, 그 키 큰 여자애'하고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지는 것도 괜찮아요. 적어도 저의 특징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거니까요.


그럼 키가 커서 불편한 건 뭐가 있을까요? 일단 버스 손잡이나 지하철 손잡이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리나: 맞아요. 머리, 얼굴에 자꾸 부딪쳐요. 특히 낡은 건물, 좀 오래된 건물에 가면 세면대도 너무 땅에 붙어있어서 어깨도 굽히고 무릎도 굽혀서 겨우겨우 손을 씻기도 해요. 어딜가나 쳐다보고 주목받는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바와 같이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아가 단단하지 않으면 쉽게 상처입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요. 옷의 길이, 소매나 바지 길이 안맞는건 최근 많이 우리나라 사람들 체형이 서구화되면서 좀 많이 나아졌어요. 물론 아직도 팬티스타킹 같은건 길이가 짧게 나와서 불편하긴 합니다.


다음 인터뷰는 키 큰 여자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 해볼게요.

리나: 네, 할 이야기 많아요. 기대해주세요.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키 큰 여자가 본 넷플릭스 톨 걸(Tall gir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