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각사에서 복숭아를 맛있게 먹는 최의 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복숭아 과즙이 나의 입과 손을 타고 흐르는 것은 기분에 하마터면 허공으로 손을 뻗어 올릴 뻔했다. 당장이라도 복숭아 한 입을 베어 물어야만 최가 복숭아를 입에 물고 느끼는 극강의 단맛에 대한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
나에게 복숭아만큼 다디단 여름음식은 설탕국수다.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아침부터 동네친구들과 신작로에 모여 고무줄, 공기놀이를 하며 오전을 보냈다. 높은 고무줄을 넘느라 뛰노라면 얼굴과 등까지 땀범벅이 되어 쉬고자 앉아서 공기를 하였다. 땅바닥에서 돌을 공기삼아 흙먼지를 날리며 1단, 2단으로 넘어가는 사이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쓱 닦고 나면 이마의 땀이 흙먼지까지 붙들어 곧 까맣고 까만 촌아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태양이 더 높아질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우리를 내리쬐면 공깃돌을 그대로 남겨두고 흙먼지를 잔뜩 끼워 무거워진 손톱으로 꼬르륵거리는 배를 잡고 집으로 향하였다. 그대로 툇마루에 누워 지친 몸을 쉬고 있자면 마중물로 끌어올린 지하수가 폭포수 떨어지듯 시원하게 바구니 위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빨래하듯 철퍼덕 소리를 내면서도 생애 마지막 유람을 시키듯 큰 대야에 든 면을 이리저리 조심스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듯 바구니에 옮긴 면의 마지막 지하수 한 방울까지 털어버리고자 사정없이 널뛰기를 하듯 바구니 속에서 하늘 구경을 하다 팽개쳐졌다. 차디찬 물에 그 어떤 양념도 없이 흰 설탕만 풀어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녹여낸다. 설탕 마지막 몇 알갱이가 소용돌이치는 그릇 한가운데에서 버티는 그 마지막 찰나에 탈탈 털어져 무미건조해진 국수 위에 쏟아붓는다.
단맛의 절정인 설탕국수 한 그릇으로 배고픔도 더위도 잊고 툇마루에 다시 누웠다. 마당을 내리쬐는 햇빛을 이불 삼아 온종일 시끄럽게 노래하는 매미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금세 잠이 들곤 했다. 작년, 이 맛이 생각나 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었다. 분명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사실, 레시피가 따로 없다. 엄마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설탕양을 조절했을 즉흥적인 음식이다.) 그때의 그 맛은커녕 근처에도 못 가는 국수를 한입 먹고 실망했다. 최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다. 그녀의 은각사 복숭아와 나의 어린 시절 설탕국수맛을 재연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김 선생은 음식을 취재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쓴다. 하지만 '맛있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맛만 보고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는 양념을 찾아낼 만큼 맛에 민감한 편이지만 '담백하다''개운하다''입안에 향이 오래 남는다'등의 표면적인 맛을 설명할 뿐이다. 미식가임에도 오래전부터 맛있는 음식을 만나보지 못한 김 선생은 그 이유를 안다. 그녀 스스로 음식은 맛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했다. 추억이 없는 맛집의 음식은 그녀의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그런 김 선생의 기억에 유일하게 맛있는 음식으로 남은 '콩국'은 어떤 의미일까? '콩국'은 곧 엄마에 대한 그리움 아닐까? 김 선생의' 콩국'이 간간했던 건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과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맘껏 울지 못한 울음이 머금은 탓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김 선생의 콩국처럼 아빠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번데기가 그중 하나다. 어렸을 때 유원지에 놀러 가면 아빠는 꼭 종이컵에 든 번데기를 먹었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나에게 이쑤시개에 낀 번데기를 권하곤 했는데 눈살을 찌푸렸던 기억이 있다. 점잖지 못한 음식으로 아빠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포차에서 마주하는 번데기탕을 보면서도 아빠를 추억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문득 궁금했다.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생각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를까? 연어회와 맥주라고 답한다. 평소 연어회를 좋아하여 아이들과 자주 먹는다. 그럴 때면 꼭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데 그 모습을 기억하는 것 같다. 늙어서 엄마가 없다면 제사는 지내지 말고 연어회 한 접시와 맥주 한 잔으로 엄마를 추억하라고 말할 정도로 연어회를 좋아한다.
과연 김 선생은 어렸을 때 먹은 것과 똑같은 콩국을 먹으면 그때의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최는 유명한 복숭아 산지에서 맛본 복숭아는 맛있었지만, 은각사에서 그와 함께 먹었던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 김 선생의 콩국도 그러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도 엄마 없이 먹는 연어회 맛의 변화를 느낄까? 엄마를 추억하는 음식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가 김 선생처럼 진짜 맛을 찾기 위한 여정이 될까 싶어 괜스레 슬퍼진다.
아니다. '음식의 맛은 추억의 맛'이라고 했다. 추억을 남기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눈물이였을지 모를 복숭아가 그와의 반나절 추억으로 최에게는 최고의 여름 단맛이 되었다. 다른 이에게는 고소한 맛이 일품인 콩국이 엄마를 묻고 돌아서는 김 선생에게는 간간한 콩국이었다. 쭈글쭈글 징그러운 번데기를 보며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드는 나와 달리 기름진 연어와 톡 쏘는 와사비 간장을 보며 단맛을 느낄 엄마와의 달콤한 추억을 남기면 되지 않을까? 나의 설탕국수처럼? 슬픔을 남기지 않으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