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하고 사악한 집단에서 유순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볼 순 없지, 오히려 독한 사람이 착한 사람 일 수 있지, 아니, 현대사회에서는 독한 사람들이 착한 사람 일거야 - 황성진
작년 2022년 1월 나의 일기장을 들춰보다 문득 든 생각이다. 그날 저녁 MBC뉴스를 보다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모 금융 중앙회 자금운용 책임자로 있던 동기의 안 좋은 소식이 흘러나온 것이다.
참으로 감투, 권력이라는 것을 이권과 사람을 움직이는 비열함에 쓰는 조직이 아직 있다는 것에 놀랍고 그런 것에 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거나 저항은 하나 큰 벽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버티어온 자존심의 여린 심성이 안타까웠다.
당시 모두가 화가 났다. 동기중 한분이 분풀이하듯 밴드에 아래 글을 올렸기에 그때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애통해만 하고 있었는데 몇몇 독한? 착한 동기들의 노력으로 마무리가 잘되었다고 들었다.
'슬퍼만 할 일이 아니다 악다구니 치고, 떠들고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때론 멱살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저냥 시들어가는 육십 인 거다'
돌이켜 보니
나도 주변에서 착하다는 소릴 들으며 자랐고 스스로도 그런 줄 각인해 오며 살아왔다. 착함이란 매우 주관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다.
무엇을 착하다고 하는가 유약하면 착한가 아니면 말 잘 들으면 착한 것인가 시대에 따라 기준은 변하겠지만 예전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께 순응하는 사람들을 착하다 했다. 지금은 그 기준이 바꾸고 있지만 어쨌든 착함은 불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판단력과 균형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황성진 님의 말처럼 오히려 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 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감수하는 것 또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위해 당당히 대처하는 것 등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독한 것이 착함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그동안 살아오며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강해야 한다. 독해야 한다. 그래야 아량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연약해지고 풀이 죽으면 주변은 더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독한 정신에 냉철한 판단력으로 두 눈은 더욱 깊게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게 만들어야 한다.
예의를 갖추고 젊잖은 행동으로 좋은 이미지로 살아가는 것은 달려드는 것들에 대해 강함과 독함으로 냉정하게 물리치는 역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