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자러 산으로 갔다

정신적 해우소가 거기에 있다

by 롱혼 원명호

산은 당신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이끈다

-조엔 바우어


산에는 왜 가 십니까?

막걸리에 산채정식 먹으러 갑니다.

정상에 오르는 성취감이 좋아서 갑니다.

단체모임에 불려 어쩔 수 없이 갑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삼아 갑니다.

할 일이 없어서 시간 때우러 갑니다.

우울해서 잡념을 없애러 갑니다.

이렇듯 저마다 산에 가는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고 가십니까?

호텔에 약속이라도 한 듯 곱게 화장하고 머플러와 모자 선글라스 번쩍이는 등산복장을 한 사람들 마치 제집이 산속 인양 퇴근하듯 구두에 검정 봉지 하나 들고 터덜대는 사람 히말라야 등반이라도 하듯 온갖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는 사람 몇 발작 욱 걷고 사진 찍고 또 찍으며 가는 사람 깃발 하나에 틈틈이 단체로 구호를 제창하며 단합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필요와 기준에 따라 모두 제 각각이다. 산은 오르라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세상의 해방구 그들만의 정신적 해우소였다. 그래서 휴일이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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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이는 빌딩 13층 한 모퉁이 사무실에 앉아있는 개성이 강한 이 사람을 통해서 말이다. 깔끔한 외모의 트레디셔널한 클래식 정장에 최고급 벨트를 매고 반짝이는 구두로 붉은 카펫을 오가며 굵고 낮은 차분한 저음의 공식적이고 전문성이 돋보이는 언어로 모두의 존경과 롤모델로 희망을 흠뻑 뿌려대는 내로라하는 금융인, 그 도 사실은 점심 식사 후에 창밖 먼산의 그곳을 지긋이 응시하며 알듯 모를 듯 미소를 띠면서 한 손엔 커피를 들고 또 다른 손으로는 몽블랑 만년필로 ‘더러운 놈들' 두 겹 세 겹 겹쳐 끄적이고는 동글동글 글씨를 휘감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속 타는 마음이 우리네와 같은 사람이 저 위에 앉아 있다.


휴일,

아침부터 가슴이 벌렁거리며 나대서 어찌 숨길 수도 없는 듯 핸드폰으로 연실 욕을 섞어가며 산행 친구의 출발을 재촉한다. 휴일 산을 가려는 그의 모습은 정말 새로운 다른 사람이다. 지하철 계단에 누워도 어울릴 복장에 잠자다 일어 난 듯 부스스하다. 여름과 겨울을 제외하고는 늘 똑같은 트레이닝 같기도 바람막이 같기도 한 색 바랜 분홍색 겉옷을 걸치고 바삐 걸어 나간다. 이들의 산행은 운동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놀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중턱 그들만의 아지트에 앉아 소주 한잔 나눠 마시고 낮잠 한숨 자러 가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된다고 그럼 우리 예비군복 입으면 어떻게 하지?

그냥 바닥에 뒹굴고 싶고 욕도 나오고 심한 장난도 치고 싶고 신발도 끌고 싶고 남들에게 손가락질받고 싶어 미치려고 하는 감정 그 감정을 이들은 산에 가서 찾아 풀어놓고 오는 것이다.


산 중턱쯤 정자 아래 큰 바위가 버티고 있고 그 밑을 돌아 가면 등산로에서 잘 보이지 않는 좋은 공간이 하나 있는데 여기가 그들의 아지트 이자 세상 배설 구인 그들의 해우소인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부터 한 병씩 들고 홀짝이며 울분의 욕부터 늘어놓는다. 회사 후배 임원에서부터 나라 걱정 그리고 가족들의 섭섭함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로 앞다퉈 한없이 퍼붓고는 조용히 널브러져 낮잠을 잔다. 아마 꿈속에서 그들의 낙원에서 뛰고 있으리라 그리고 아마 월요일 이면 또다시 짙은 향수를 흩날리며 빠릿빠릿 힘찬 눈동자의 굴림 속에서 각진 걸음의 만인의 우상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애초에 일반 등산과는 거리가 멀었다. 원초적인 정신적 휴식, 무장해제를 찾으러 산으로 온 것이다.

. 부. 럽. 다.

우리는 이런 정신적 배설구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가?

구석진 카페, 게임방, 바글바글 선술집, 노래방 등 정신적으로 무장 해제가 되는 원초적인 해방구를 그들은 정신적인 해방구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등산객들 사이에 묘하게 끼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는 말없이 음흉한 눈짓으로 거든다 다들 하나씩 자신만의 정신의 해방구를 가져 보라고 없다면 산으로 오라고 산에서 내뱉고 나면 다시 의욕이 넘치며 더욱 건강한 정신으로 엔도르핀이 솟아오를 것이 라며 속삭인다. 우리들도 기회가 된다면 정신적 해방구를 찾아 다양한 방법으로 산으로 가서 마음껏 심호흡을 해보자.


‘산은 발견의 장소이고, 산비탈을 여행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심리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라고 페트라르카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비탈길을 어슬렁 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기왕에 나선 걸음 그들의 심리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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