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영역을 지키며 삽시다

자존심이 걸린 내 영역

by 롱혼 원명호

강릉을 가려고 시외버스를 탔다. 우등버스라 그런지 좌석 배치가 좋고 홀로 앉는 좌석도 큼직하다. 편안한 마음에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출발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본인 자리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깜짝 놀라 표를 살펴보니 내 자리가 맞다.


여기 내 자리가 맞는데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아니, 이것 보세요

여기 분명 12번이라 적혀 있잖아요


큰 목소리로 표를 내 앞에서 흔들어 댄다. 자리가 중복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확인해 봐도 내 자리가 맞다. 요즈음 시대에 그럴 리가 의문이 들지만 잠자코 눈감고 화를 억누르며 내가 꿈쩍 않고 버티고 앉아 있자 이번에는 큰소리로 기사 아저씨를 부른다. 때 아닌 소란에 갑자기 뛰어오신 기사님께서 출발시간을 잘못 보신 그 아주머니를 큰소리로 나무라며 내리게 하여 일단락되었지만 화가 난 내 기운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는다. 무엇 때문일까


사람은 자기의 영역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민일 그 영역이 침범당하면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이다. 영역이라는 것은 활동, 기능, 효과, 관심 따위가 미치는 일정한 범위라고 한다. 동물의 세게에서는 특히 엄하다. 맹수들은 대부분 영역 동물이고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영역 동물이라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행동이 강하다. 사람도 다른 의미에서 심리적인 영역 동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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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맡은 담당이란 것이 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구체적인 업무를 하는 영역을 설정해주고 처리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구매를 담당하는 직원이 여러 회사에 견적을 받아서 동종 품질로 저가격의 업체를 선정하였는데 갑자기 과장이나 부장이 다른 업체로 하라고 일방 지시가 내려오면 화가 나는 것이고 내 영역이 침해당했기에 본인의 존재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사장 입장에서 부여한 권한에 대해 그 영역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고유의 영역을 지키려는 인간 본능 때문이다. 이것이 침범당하면 속이 상하고 힘들어하는 것 또한 심리적 영역의 침범 때문이다.


예전에 독일에 출장을 갔을 때 당시 독일 공항에서는 담배도 피울 수 있어 주변이 매우 지저분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곳이 이렇게 관리를 안 할까 생각을 하며 깔끔하게 보이는 식당으로 갔는데 같이 간 친구가 자꾸 바닥에다 휴지를 버리는 것이었다. 아니 교양 없게 왜 그래 하며 얼른 일어나 주울려니 어디선가 나타는 뚱뚱한 아저씨가 No, No! 를 외치며 다가오는 것이다. 자기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그 일을 하기에 급여를 받는 자기 영역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돌아와 당시 버스터미널 화장실을 갔었는데 마침 청소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계속 큰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으시며 바닥 걸레질을 하신다.

아니 여기다 휴지를 버리면 어떡해

아이고 더러워라

지금이야 이러시는 분이 없겠지만 당시 이분은 역할과 영역의 개념을 바르게 가지시 못했던 것 같다. 그 시대를 스쳐온 분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경험이 있었으리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동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의 영역에 대해 보통 빠르고 활발한 아이가 느리고 조용한 아이의 영역을 침범하는데 이런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부모가 경계를 만들어 주어 영역 개념을 심어 줘야 나중에 비슷한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이 경험한 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심리적 영역 동물이라고 본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서로의 심리적 영역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을 선호하다 보니 친하다는 명목 하에 또는 지도한다는 명목 하에 불쑥불쑥 자연스레 참견을 하며 그 영역을 침범하여 상대를 힘들게 한다. 절대 심리적 영역을 침범하면 안 된다.


우리가 자주 미국을 보면서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때론 흉을 본다지만 심리적 영역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야기를 달리 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개인주의가 희박하다는 이야기고 또 남의 영역을 자주 침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제는 서로서로 의식적으로 상대의 심리적 영역은 지켜주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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