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우리 까지만 하기로 했다

by 롱혼 원명호


비가 예보된 지난 토요일 벌초 하는 날이다.


부지런히 서둘러 강릉 청솔공원 장모님 인사드리고 양양 선산으로 달렸다. 비 예보로 벌초 시간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바쁜 마음을 재촉하며 기계음이 울리는 산속으로 들어서자 향긋한 풀내음에 이곳저곳 벌초객들이 보인다. 낯 모르는 사람과 말 참견하다 칡덩굴에 걸려 땅에 머리까지 처박혔다. 그래도 나는 신나는 날이다.




추석을 맞이할 즈음이면 조상묘의 벌초 행사가 이루어진다 가을벌초는 7월 보름 이후 그믐까지 한다고 한다. 벌초란 조상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주위를 정리하는 세시풍속이며 유교,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기에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대부터 아마 관습화 되어온 행사가 아닐까 한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지나 연장을 메고 다니며 연중행사로 해왔는데 장례의 형식이 바뀌면서 또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 법에 변화가 오면서 서서히 없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은 엄연히 현존해 있다.


벌초행사가 우리와 같이 즐거운 집도 있는 반면 어떤 집은 너무 많고 산소가 멀리멀리 떨어져 있어 불평도 많다. 또 벌초행사에 참가했니 안 했니를 가지고 집안이 다투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의무에 따른 부담을 지기가 힘든 요즈음에는 벌초 대행사를 이용하는 집도 늘어난다고 들었다.


친척 모임


우리는 수복지구라 할아버님 윗대의 묘를 잃어버려 할아버지 할머니가 1대로 선산이 고향 근처에 있어 모이기도 쉬워 다른 집들 보다는 수월 하다. 그리고 고향 벌초는 그동안 어른들께서 직접 하시니 우리 형제들은 타향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가곤 했었는데 아버님들께서 연로해 지시자 10여 년 전부터는 우리 사촌 형제들이 직접 하기로 하고 막내가 모임을 구성하여 사촌형제들의 모임을 선산 벌초날로 정해 1년에 한 번 형제들 가족들 얼굴을 보고 그동안의 회포도 풀며 아이들 커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행사로 되어 벌초날이 기다려졌다.


벌초날은 추석 2주 전 토요일로 정해놓아 미리 통지하지 않아도 대충 알 수 있다. 그래도 막내 총무가 친절하게 고지를 해준다. 오전 9시 30분까지 선산에 모여 묘는 낫으로 바닥은 제초기로 부지런히 하다 보면 11시 전에 다 끝나고 인근 유명 막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온천을 찾아 목욕까지 하고 나면 저녁때 지정된 곳으로 모여 사촌들과 고기도 구워 먹고 회도 먹고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목 일정으로 늘 잡혀있어 더욱 즐겁다.


앞으로는


우리 아이들과 조카들이 커가면서 독립을 하고 성인이 되어가니 또 그렇게 예전 우리들이 그랬듯이 바쁘다는 핑계와 멀리 사는 이유로 빠지게 되어 어른들인 우리만 모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세월은 그렇게 반복되어 간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 살고 있고 둘째 사촌 네는 딸만 있고 막내 집들은 아들이 한 명씩 있지만 조상 묘에 대한 지킴의 의지가 없고 또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님 대가 돌아가시고 나면 장례의식을 바꿔 재례나 벌초를 차차 없애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편하긴 하겠지만 친척간의 모임이나 조상의 집안이라는 의미는 희박해지고 각자 개인들의 삶만 존재하게 될 것 같다.


유교의 관습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점에서는 아쉽다 하지만 우리 사촌들은 쿨 하게 세상의 서구화와 가치의 개인화에 맞춰 나가기로 하고 우리까지는 열심히 모이기로 하고 지내 오지만 일 년 이년 지나가는 세월이 빠른 것 같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공부하며 찾아보고 제안도 해봐야겠다.




벌초 >


조상님 이발을 해드렸다


전에는

한 올 한 올 다듬어 드렸는데

유행하는 거라 하기에


기계로

싹둑 커트해 드렸다


맘에는 드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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