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며 낯선 언어들이 돌아다닌다
새벽운동을 하러 이어폰을 끼고 나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 이어폰을 빼고 돌아서니 벌써 등뒤에 빠싹 붙어있는 차려입은 어르신이 서 있다.
'장의사가 어디에 있소'
다짜고짜 장의사를 찾는다. 지금은 장례지도사를 지칭하지만 장의사란 예전 어릴 적 동네에 한두 곳 정도 있던 돌아가신 분들을 염을 하며 모셔주던 곳이다. 아니 이 새벽에 이젠 없어진 장의사를 찾다니 갑자기 의아하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엉겁결에 옆에 있는 편의점을 가리키며 들어가 물어보라 하고는 운동을 나갔다.
한 시간 정도 공원을 기분 좋게 걷고 들어오며 물을 사러 24시 마트에 온 김에 물어보았다.
'혹시 아까 장의사 찾던 분 계시지 않던가요?'
'아 그분요 제가 안내해 드렸어요'
'엥, 어떻게??'
'저기 다리 건너면 바로 옆에 있잖아요 oo장례식장'
그렇다 동시대의 언어로는 바뀐 사회의 변화로 소통이 안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언어로는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시 향기를 모르기 때문이다.
솥뚜껑운전수, 사꾸라, 옥떨매, 핫바지, 삐삐, 시티폰, 회수권, 가다마이, 다라 등등
지금 사라지고 있는 언어의 향기들이 갑자기 떠오른다. 당시의 추억과 함께한 언어들이다 그 추억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면 동감되는 정서와 함께 이해하며 소통이 잘될 것이다.
하지만 아까 그 장의사를 찾던 것과 같이 사회가 변하면서 명칭이 달라져 엉뚱하게도 동시대끼리는 안 통하지만 그 당시 정서를 모르는 젊은이들과는 잘 통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만일 지하철역에서 누가 나에게 회수권 어디서 사냐고 물으면 분명 이상하게 쳐다보며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에게 물어보면 분명 교통카드 구매 앞으로 안내할 것이다.
반대로 어르신들끼리 모여서 더운데 하드나 하나 사 먹자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여기 하드 어디에 있소?'
아마 컴퓨터 가게로 가라고 알려 줄 것이다.
이렇듯 언어의 향기는 살아온 정서와 함께 하는 추억이며 낯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