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해야 살 수 있다

그것은 MZ세대만이 아닌 인간 본성이다

by 롱혼 원명호

요즈음 MZ세대를 떠올리면 삼요(이걸요? 제가요? 왜요?)를 당연히 질문하고, 효율보다는 공동의 가치를 중요시한다고 내세운다. 즉 MZ세대는 근거와 당위성을 중요시하여 그에 따른 본질을 파악해야 일을 한다고 한다.


억울하다. 왜 MZ세대만 그런다고 생각하는가 단지 그들은 안정적인 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기술발전의 환경에서 인간 본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가치와 모든 세대에서 추구하는 인간 본성과 본질은 똑같은 것이다. 단지 지금까지 질문하는 소리가 묻혔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무엇을 찾다 다시 왔는가?

소크라테스가 본다면 '무엇을 찾다가 다시 왔느냐고' 다시 질문을 할 것 같다.

소크라테스 시대 사람들은 질문을 통해 지식과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었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과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것들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지금 MZ세대의 합리와 공동의 가치를 중요히 여기며 근거와 당위성을 질문을 통해 명확한 이유와 그의 본질을 파악해 나가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가 짧은 식견으로 보아도 두 세대가 비슷하다. 이것은 인간의 사고가 2500년 전으로 다시 회기 했다는 이야기 인가 아니면 2500년 전 사고가 유지되고 있는데 잠시 다른 생각을 가졌을 뿐 인가


2500년 전 에도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면서 신들이 인간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믿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신에 대한 믿음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지식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개인의 내면에 대한 질문을 더 중시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인간은 예부터 근본적인 존재의 사고에 대해 탐구를 계속해왔다. 그러다 기술발전으로 산업화를 지나면서 마치 바벨탑을 쌓듯 신의 영역을 넘봐 왔는데 그것이 인간의 사고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기술의 발전도 그렇게 도와주다 보니 더욱 경쟁적으로 매달리며 급기야 신을 모방하는 집단 리더들의 폐쇄적인 세뇌에 경쟁적으로 매몰되어 달려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작금에 이르러 기술이 폭넓은 사고의 영역으로 까지 도달하고 코로나와 같은 팬더믹이 덮치자 인간의 본질을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데 그들, 소위 MZ세대가 보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학자들처럼 말이다.


MZ세대는 효율의 시대를 배제하며 대신 문화와 가치의 시대를 열었다고 박창선 대표가 말을 한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즉, MZ세대는 합리와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움직이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이야기인데 기술의 발전을 빼고 이야기하면 사실 2500년 전과 인간의 사고는 똑같다.


추구하는 본질은 같다


이는 결국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은 같다는 것을 말한다. 새마을 세대니, 산업화 세대니, Y세대니, MZ세대니 모두 자신의 내면에서 본질을 찾는 것은 같다, 단지 물질적 발전의 과정을 겪으면서 찾는 방법으로 또는 우선순위로, 신의 선택으로, 리더의 선택으로 등 다양한 외력에 억눌려 참아왔는데 MZ세대에 와서 기술과 팬더믹등 여러 환경이 무르익자 들리는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사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질문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MZ세대를 비난하는 것도 또 그러지 못하는 것을 탓할 필요도 없다. 차라리 이 기회에 그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자신의 본질의 추구에 나서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우리가 나이와 상관없이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은 2500년 전의 그 사람들이이미 증명을 해 주었다. 그때 그들도 그랬듯이 지금 MZ 세대가 옳다고 믿고 있는 가치보다는 내게 맞는 가치를 직접 선택하여 나가는 주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나만의 질문을 당당하게 말을 해야 한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가치를 위해 우리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