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톱니바퀴의 삶

거대한 질서에 살아지면서 나 자신에 충실하게 살아 가자

by 롱혼 원명호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다는 춘분이 어제였다. 그러고 보니 해가 길어지는 것이 느껴지고 깨어날 시각을 알아차린 새순들이 움트려 힘을 쓰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이렇게 우주 전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가 막힌 메커니즘의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내 의지대로 계절을 바꿀 수 있던가. 우리는 잘 맞춰진 우주의 세상 속에서 내 던져져서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마라 단지 지금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너무 허무한가?


며칠 전 우연히 NETFLIX에서 '우리의 우주‘라는 다큐를 보게 되었다. 빅뱅에서부터 그리고 탄생한 수소로부터 다양한 원자들의 결합과 그들로부터 파생된 행성들이 불규칙 속에 맞물려 가면서 태양의 에너지로 생명이 탄생하는 신의 오묘한 정제된 억겁의 질서를 보게 되었다. 147억 년, 50억 년 전 등 상상을 초월하는 그 시점의 대변혁은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영원할 것 같은 지금의 시간, 비록 우주의 시간으로는 찰나의 시간 이겠지만, 이렇게 이 순간 우리가 살아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50억 년 전부터 무질서를 지금껏 질서화시켜 온 우리 태양계의 메커니즘을 찰나의 순간을 사는 우리가 무슨 수로 변화 시킬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질서의 톱니바퀴에 내던져져 있어 순응하여 그냥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우리네 시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에 종속되고 자아를 상실한 것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톱니바퀴의 또는 다람쥐쳇바퀴의 일상들이 싫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 홀로 살아지던가. 아무리 똑똑하고 학식이 많아 모든 것을 통달하였다 하더라도 옆에 이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끌고 당겨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혹자는 엄청난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서 나 홀로 도인의 생활을 이어나가서 깨우쳤다면 그의 최종 종착지는 과연 무엇이던가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힘든 깨우침으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인정하고 자신의 내면의 가치로 나답게 살으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프렉탈처럼 우주의 질서가 그러하듯 우리의 삶의 질서도 그러하니 그런 거대한 힘에 우리가 살아지는 톱니바퀴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움이 많은 성현들로부터 지금 여기 브런치에서도 깨우침을 얻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결론에는 나, 자신에게로 귀결되는 것 같다. 나를 알고서, 나답게, 자신답게 살으라는 것이다. 즉 각자의 지금 역할을 충실하게 깨우치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가장 진정한 삶의 기본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거대한 질서 속에 순응하여 살아지면서(수동) 그 어떤 역할을 맡은 나 자신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능동)이 우리가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톱니바퀴의 진정한 삶에 주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춘분을 맞아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