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 속에서 산이란
똑같이 생긴 도시들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가 빛나는 도시라는 미래도시를 이야기하면서 큰 높은 건물들을 만들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띄우면 그 사이 공간을 녹지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 발단이 되어 만들어진 도시가 지금 우리가 보는 우리의 많은 대도시의 모습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대도시 모습들은 모두 비슷하다. 그런데다 일반 소도시까지도 경쟁적으로 정비라는 명목 하에 겉모습들이 비슷하게 되어간다. 그들의 거리를 보면 프랜차이즈화 된 대형 상점들이 서있고 길모퉁이에는 영락없이 똑같은 형태의 핸드폰 가게와 대형 커피숍, 식당들 그리고 관공서와 그 뒤로 보이는 아파트까지 사투리를 듣기 전까지는 여기가 어딘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이다. 진정 좀 더 다양하게 느낄 곳은 없을까
똑같은 사람들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한번 본 듯한 사람들이다. 지금 유행하는 똑같은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들, SNS 따라쟁이, 온 동네를 누비고 있는 짧은 파마머리들 익히 봐왔던 겉모습은 어디를 가든 비슷하다. 그러기에 서로들 지나가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직접 대면하는 사람은 그의 외모와 태도를 보고 나름 다른 특징들을 찾아낸다. 주관에 따른 강인한 사람, 착한 사람, 믿음직한 사람 등등 우리는 그것을 첫인상이라 부르며 그것은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래간다고 한다. 결국 사람은 만나서 부딪히며 실없는 대화라도 나누어 봐야 서로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더욱 드물어지고 이제는 SNS 상의 사진들이나 메타버스 세상에서 만들어진 아바타로 소통하며 살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사람의 실체, 본질과 다른 가공된 아바타의 과한 용기를 보면서 판단하며 사는 것이다. 진정한 그 사람의 본질과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기회는 이제는 정말 없는 걸까
다행히 우리에겐 산이 있다
산은 비슷한 도시의 거리와 달리 다양한 품세와 변화무쌍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 보인다. 여기서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말하는 계급장 떼고, SNS 프로필 없이 맨얼굴로 만나는 장소가 산이다. 서로 몰라도 오르고 내리며 인사를 하는 곳 자연과 호흡을 하는 곳 내 주변의 사람과 장소를 의식을 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송익필 선생은 산행에 대해 '산길을 가다 보면 쉬는 것을 잊고, 앉아서 쉬다 보면 가는 것을 잊는다’ 했다. 산은 정직하다. 누구든 제 발로 걸어 올라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교감하며 일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자연의 언어를 얻어 오는 곳이다. 그동안 힘들었던가, 가족들 친구들에게 잘 대해 주었던가, 그날 왜 조금 더 참지 못했던가, 나는 누구인가 선문답의 답도 얻을 수 있다.
코로나를 지나며 더욱 분화되어 혼자 사는 세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디지털 세상 속 수많은 데이터의 이기를 누리며 편리함에 도취되어 손가락이 아픈 줄도 모르고 눌러대는 SNS도 많이 하시라 그것도 귀찮으면 빅스비나 시리를 외치며 뒹굴어도 좋다. 그리고 현실이 안타까우면 메타버스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 좋다. 하지만 때때로 진한 자연의 호흡과 함께 살아있는 나의 살갗을 만져보며 흐르는 땀의 쾌감을 얻으며 오늘을 지금을 이야기해 보자 그리고 속마음을 그대에게 털어놓자 이 대비되는 감정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도, 혼자서도 더 잘 살게 해 준다.
이것이 내가 동네 뒷산이라도 오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