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용기
해외출장이 부러움과 혜택으로 자리 잡던 때가 있었다. 굳이 부러움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해외출장을 선호하였다.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해본다는 사실과 회사 돈으로 비행기표를 받아 숙식제공으로 일을 한다는 것에 뿌듯함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서 인정받는 것 같은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해외 출장을 가면 인프라 견학이다 하여 출장을 간 김에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주어진다. 없다면 개인이 조금 부지런하게 만들면 된다. 나도 돌이켜 보면 독일, 말레이시아, 태국, 일본, 미국, 브라질, 중국 등의 해외 출장 시절 인프라 견학을 많이 한 것 같다. 그중에 특히 브라질의 마나우스 상공을 세스나 비행기로 드넓은 잔디밭 위를 날뛰는 듯한 착각의 밀림 위를 날아본 추억은 아직 나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오늘 헝가리 설치 중인 라인견학을 위한 출장을 앞둔 사람이 해외 출장을 못 가겠다고 면담을 하러 들어왔다. 코로나의 염려와 현지 나가 있는 사람의 전언이 힘들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대리 해외에 나가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한 번도 없는데요
그럼 이 기회에 한번 나가보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게 힘이 들다고 해서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힘들 다는 것인지 본인도 나도 알 수가 없다. 통상적인 꼰대의 말로 일단 부딪혀봐 아무것도 아닌 것이야, 나가 있는 사람이 일부러 겁주는 거야 등등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경력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라는 말만 해주었다.
우리가 보통 해외출장을 겁내 하는 이유는
1. 해외를 나가본 경험이 없어서 절차의 두려움
2. 영어가 안되어 대처에 대한 두려움
3. 문화적 차이에 따른 적응의 두려움 등이다
오히려 일 업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내가 늘 하던 익숙한 일이니까. 단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십여 년 전 해외 출장으로 해외를 자주 다닐 때 일이다. 해외 생활을 말레이시아, 중국, 브라질 그리고 유럽의 독일 등을 몇 년씩 다니다 보니 점점 해외 생활이 익숙해지며 편해져 갔다 하지만 아직 익숙지 못한 왠지 모를 넘지 못한 마음의 벽이 늘 그곳에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일이 마무리가 될 때쯤 주말이나 퇴근 후면 자주 맥주를 마시던 셀렘방 도로변 우리의 요즘 편의점 같은 가계가 있었다. 너무 익숙하고 검증이 된 곳이라 혼자 가도 편안한 가계였다. 어느 날 브라질에서 새로 합류한 해외 건설의 선배가 맥주를 사주겠다며 가자 하여 우리는 당연히 익숙한 그 집으로 갔다. 언제나처럼 길가의 원탁 테이블에 타이거 맥주와 자주 먹던 마른안주를 펼쳐놓고 마시는데 갑자기 딱 하며 한국에서 가져온 번데기 통조림 뚜껑을 따고 있는 선배를 보았다.
아니, 여기서 왜 이러신대 어쩌시려고 갑자기 찾아온 걱정에 긴장이 되고 히잡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우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선배는 아랑곳없이 번데기를 먹으며 호기심이 많은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먹어보라 권유도 하며 도망가는 사람을 보며 재미있다고 웃으며 즐겁게 마시며 먹는데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 머리를 강타하는 선배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렸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우리가 한국에서 생활하듯 똑같이 하면 되는 거야' 지금도 전율을 느끼는 그 간단한 몇 마디의 말이 구구절절 거창한 세계화, 국제화를 딛고 일어나 마음속 족쇄를 끊고 날개를 달아 주어 내 마음속의 그 벽이 허물어졌던 경험이 있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지난번에 한번 다녀온 사람인데 지원자가 없으면 자신을 또 보내 달라는 것이다. 고민이 된다.
마음의 벽을 한번 허물면 편한데 그 한 번이 힘든 것이다.
김대리를 한번 더 불러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것도 강요 같은 마음에 신경이 쓰인다. 그가 내 브런치 글을 본다고 하니까 찾아오겠지. 12월이 가기 전에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