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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이 별것인가

풍성해 보이는 머리카락이 좋다

by 롱혼 원명호

코로나 핑계로 갇혔던 모임들이 활발 해지다 보니 나에게도 그 순서가 왔다. 오랜만의 만남의 금요일 오후다. 기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약속 시간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마땅히 기다릴 곳도 없는데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미남‘이라는 이름부터 끌리는 남성 미용실이 눈에 들어온다. 깔끔한 실내가 보이고 마침 바닥 청소를 하고 계시는 한가로운 타임이라 불쑥 들어갔다. 흰머리가 지저분하게 올라와 정리를 해야 하는데 마침 시기를 미루고 있던 터라 잘되었다. 의자에 앉자 내 머리를 이리저리 훑어보시며 만져보시던 디자이너께서 예상되는 한 말씀을 하신다.

‘ 머리카락 관리를 안 하시네요’

아니 왜 내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얼마나 신경을 쓰는데 머리 영양제와 머리카락 난다는 샴푸 소개하려고 하는구나 훗, 내가 넘어갈 줄 알고

‘제가 시간이 별로 없는데 오늘 염색 안 하게 흰머리 안 보이는 곳까지만 살짝 다듬어 쳐 주세요’

단호한 기선을 제압한 후 요청한 대로 머리에 살짝살짝 기계를 대다 보니 지저분 한 머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조금만 쳐올려 주면 깔끔할 것 같은데 다시 부탁을 드리니 흰머리가 나와서 그런다고 한다. 잠시 고민하다 늘 그렇듯이 체념하듯 염색을 할 테니 깔끔하게 쳐달라고 했다. 매번 미용실에 오면 이런 마음의 실랑이를 하게 된다.


나는 머리숱이 정수리를 중심으로 휑하게 보일 정도로 빠져가며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많이 나와있다. 악순환의 연속이지만 둘 다 유전이라 여기고 체념하고 산다. 그래도 중년의 외모를 무시할 수없어 옷도 챙겨 입고 향수도 사용하는데 머리카락이 자꾸 줄어드니 어디를 나가려면 거울 앞에서 정수리를 살펴보는 시간이 꽤 많아진다. 거기에다 머리카락이 힘이 없어 착 달라붙으니 멋을 부릴 수 도 없다. 안타까움에 그저 샤워를 하면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습관적으로 거울에 머리만 숙여 머릿속을 살펴보고는 씁쓸해한다. 머리카락에 기가 죽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 같다 머리카락은 그냥 동물과 사람을 구별하는 정도의 단순함이 아니다.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의 이야기에서 거세를 의미하는 남성성의 상실을 의미하기도 하고 섹슈얼리티, 성적 욕망을 상징하기도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머리카락으로 값비싼 향유를 보어 머리카락으로 발라 주었다든지 화가 프리다 킬로의 ‘짧은 머리 자화상’에서도 관능미로 상징을 나타낸다든지. 이렇듯 머리카락은 동물들의 보온기능과 별도로 미용기능과 상징성이 크기에 모두들 이리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나갔던 동창회에서도 서로들 만남의 반가움도 잠시 머리숱부터 죽 살펴본다. 그중 한 녀석에게 꽂힌다 아시아나 기장인 친구인데 머리가 분명 없어서 매번 모자를 쓰고 다녔었는데 과감하게 벗어던진 모자 속의 머리가 풍성하다.

심었나?

비슷한 머리숱 들이 모여들며 질문세례가 집중되고 의기양양한 친구의 울산 어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옮기며 반복된다. 흥분된 친구를 보니 정말 머리카락이 많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 병원 어디야, 이름이?

다들 물어본다. 예약 안 받는데, 직접 와야 한데, 옆에 있던 친구가 대신 대답해주며 의정부에 가보라는 등 각자 자기 동네 명의를 자랑한다. 이렇게 전국 곳곳에 명의들과 좋은 약들이 많다는데 왜들 머리가 이런 거야

사실 머리카락이 빠지는 징조를 보인 것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풍성한 숱에 가리어 상남자의 기세로 모른 척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조금 빠진다고 병원을 간다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단지 아내만 간간히 대머리 남편은 싫다고 관리 하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정도로 넘기고 말았다. 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늘 헤어디자이너가 나에게 했던 말 ‘머리카락 관리를 안 하시네요’ 그렇다 안 하고 버티며 온 결과다. 거기에 자존심과 남성의 상징을 운운하니 나도 가관이다.


염색까지 마치고 머리를 말리려 자리에 앉으니 대뜸 ‘어머나 머리카락에 힘이 있네요’ 듣기 좋은 말에 미소가 번지자. 슥슥 머리카락을 반대로 넘기기 시작하더니 장난치듯 탑을 세우듯 올려 세운다 그러고는 다시 원래대로 빗어 넘기니 머리카락이 풍성해져 보인다.

‘머리카락에 아직 힘이 있어서 이렇게 반대로 빗어 세우고 자리 잡으면 풍성해 보여요’

거울 속에 모습은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 중년의 남자가 멋스럽게 앉아있었다. 기분이 좋아 헤벌죽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머리카락 세우는 방법의 설명과 고정시키는 스프레이 설명이 이어진다. 머리카락이 힘없이 바짝 달라붙어 있던 모습만 보다 이 가벼운 반전의 모습에 기세가 등등 해졌다.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바삐 모임 장소로 달려가며 삼손의 기운이 솟구쳐 로또도 한 장 사며 목이 더 뻣뻣해져만 간다. 이런 가벼운 반전은 언제나 즐겁다. 한데 바삐 달려가는 손에는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샴푸와 스프레이를 담은 봉투가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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