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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Oct 08. 2023

미국에서 밥 아저씨를 만났다

여행은 가끔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어릴 때 산골에서 살아봤다.

지금으로 말하면 펜션들이 들어설만한 산속 풍광 좋은 곳에서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가 2년을 살았다. 새벽이면 논에 피어오르는 몽롱한 물안개에 도취되기도 하고 바로 옆에 붙어 우뚝 솟은 산은 양치질을 하며 슬리퍼를 끌며 오를 정도다. 지금 사람들이라면 아마 온갖 등산장비를 갖추고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 집 앞마당이었으니 굴러서도 내려온다.


그랬던 내가 자라면서 도시생활에 익숙해 바빠지다 보니 그런 감성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아파트 동산에 만족하며 갇혀 지내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여행을 하며 그 옛 추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첫날 피곤을 최대 54도라는 짠물 야외 온천으로 털어내려 갔다. 일정상 한정된 시간이라 잠깐 몸을 담고 가려고 하는데 입장료가 비싸다. 망설였으나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왔는데  


야외 온천으로 모두 수영복으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그저 따뜻함에 몸이 풀어지는 것에 만족하며 우리네 스파에 있는 안마탕도 이용하며 즐기는데 갑자기 뻥 뚫린 하늘을 보는 순간 주변산들의 풍광과 함께 엄청난 감동이 몰려온다. 울컥하다.  


멍하니 아무도 없는 광활한 대지위에 나 홀로 누워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개척자의 정신을 새기고 있었다. 나름 개똥철학을 한껏 담았다. 그러느라 이곳저곳 여러 테마의 탕이 있었다는 것을 나온 뒤에 알았다.

 

온천을 마치고 개운함에 Allens거리를 찾아 걸어 다니며 예쁜 상점들과 거리의 가을 정취에 흠뻑 취했다. 길가에서 건물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명품샆 그리고 잘 차려입고 활보하는 사람들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참으로 한가로운 썰렁한 듯 어울리는 여유다. 



길에서 일을 하다가도 처음 만난 사람들과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대는 것이 자연의 멋진 풍광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깨끗한 자연으로 돌려놓은 것 같다. 그리고 더 놀란 것은 이 작은 마을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심지어 칼리지까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요즈음 사람들이 원한다는 것이 다 있는 복 받은 천혜의 마을 같다. 맑은 공기, 깨끗한 환경, 명품샾 그리고 월마트에 좋은 교육시설까지 그 흔한 아파트 하나 없이 띄엄띄엄 펜션 같은 집들이 들어차 있는 이 시골? 어디서 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의아하다. 


슬슬 노곤하고 여유도 찾아 커피도 마시며 이곳에 들어 늘어지고 싶은데 빨리 가야 한다며 재촉하는 딸아이를 따라 투덜거리며 일어섰다. 지금 콜로라도 글렌우드스프링스 Maroon Bells로 가는 중이다. 사실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그냥 가는 것이다. Maroon Bells 산속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는데 우리는 미리 버스예매를 하지 않았던 터라 대기표를 구매하고 썰렁하게 한참을 기다리다 탑승하였다. 사실 산속 풍광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저녁을 어디서 맛난 것을 먹을까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니 숨이 턱 막히며 멍하다.


눈으로 다 담지 못할 굉장한 풍광이 펼쳐졌다.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참 쉽죠~ '하면서 그림 그리는 밥아저씨 화폭이 연상되는 장관이 펼쳐졌다. 3000m가 넘는 고도의 화창한 날씨에 깨끗한 공기와 노란 단풍 그리고 저 멀리 만년설까지 장관이 한 폭의 그림이 내 눈에 박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여기를 오다니, 시적 감성이니 감정이니 다 버리고 그저 입 벌리고 멍하니 서있었다.

한동안 가슴에 품고 잊지 못할 시원함이다. 


이게 무슨 일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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