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외제차

이젠 차에 대해 관대해지자

by 롱혼 원명호

'봐라 저렇게 이름도 모르는 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나보고 왜 사라는 거야'


내성적인 탓도 있지만 어려서 일찍 타 지역으로 유학길에 들어선 이유로 고향 친구들과 서먹해져 있었다. 오래전 어느 가을 초등동창들이 서해안으로 놀러 가자고 나를 불러냈다. 마침 그곳에서 생업을 하고 있는 친구를 앞세운 모양이다. 시간도 되고 내가 뭐라고 하는 마음에 찾아 나섰다. 중간 모임장소로 가니 벌써 몇 명이 모여 있다.


'그래서 오늘 뭐 사줄 건데'

'아니 내가 왜 사야 돼 난 안내만 한다니까'

아직 그 친구에게 한턱 쏘라는 농이 오고 가고 있다가 내가 보이자 갑자기 큰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던 우리는 당시 재무시라고 불리던 산판(벌목) 차량이 우리가 보는 유일한 차였다. 산판차가 지나가면 메케한 기름 냄새가 좋아 그 뒤를 쫓아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새 차 특유의 냄새가 좋다. 그렇게 차를 귀하게 생각했던 나는 회사에 취직하자 제일 먼저 차를 먼저 장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를 엄청난 사치품으로 여겼던 그때는 우선 부모님 눈치도 봐야 하고 주변 분위기도 살펴야 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회사에서 소위 국민차라는 소형 차량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티코 다마스 바로 그 차량이다. 중공업이 주력이었던 회사가 차량을 만들다 보니 대대적 광고를 하려는지 초도 차량을 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며 우선 판매하였다. 처음에는 권유로 시작하였으나 점점 보험사 매출 신장표와 같이 그래프를 붙여가며 판매경쟁이 붙었다. 그 덕분에 당당하게 내 인생의 첫차인 티코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또 다른 차량 판촉으로 진급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차량 바꾸기에 나섰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티코를 타면 마치 통조림 속에 들어앉은 것 같다. 안에서 탕탕 치면 얇은 강관의 두께까지 느껴진다.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나 그때뿐이다. 말 그대로 국민차로 가격도 저렴하고 기동성도 좋아 아무 곳에나 차를 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한 번은 직장동료들과 새벽에 바닷가에 나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돌아오니 차가 없어졌다. 놀라서 찾다 보니 낚시가게 옆에 덩그러니 있었다. 말로는 옆 횟집에서 옮겼다는데 맘만 먹으면 장정 몇 이서 들어 옮길 수도 있을 정도로 가볍기도 했다.


그렇게 좋던 티코가 여자 친구가 생기고부터는 창피하여 타기가 싫어졌다. 멀쩡히 잘 서있는 차를 고장 났다며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녔다. 아마 이때부터 차를 보여주는 가치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강매든 아니던 회사의 진급을 핑계로 이번엔 에스페로라는 중형차로 올리자 사람까지 따라 성장한 것처럼 우쭐 대 졌다. 그 후 여러 차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차를 바꿔 타며 사람까지 바꿔지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차량은 운송수단일 뿐 효율성이 최고라는 인식은 퇴직하고 서야 든 생각일 뿐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차와 사람을 같이 엮으려는 의식이 만연하다. 말로는 우리처럼 예전 산판 재무시 차량을 쫓아다니던 세대가 바뀌어야 그런 생각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동양적 사고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기 왁자지껄 동창모임에선 나만 내 소유차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지 영업폼으로 회사소유의 낡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있던 나를 차를 동일시하며 더 부유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쑥스러워 저기 고개 숙이고 있는 이름도 모른다는 녀석은 중고차 값이 100만 원도 못 되는 기름 먹는 하마 오래된 링컨 폼생폼사인데도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리만족에 우쭐대거라 바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