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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부부싸움을 하고 있다

삶의 활력을 주는 부부싸움을 자주 하자

by 롱혼 원명호

‘한잔 하러 갑시다’

평소 조용하던 임전무가 앞장을 서자 당연히 궁금이 뒤따른다.

‘좋은 일 있어?, 생일이야?’

히죽거리는 임전무는 세상을 초월한 듯 당당히 앞장서며 팔을 내휘두른다. 묻지 말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의 평소 모습은 그들만의 독특한 형태로 각인이 되어 조금만 달라도 쓸데없는 오해를 산다. 그래서 집단에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 한두 잔 술이 돌자 임전무의 입은 오늘따라 거침이 없다. 정치 이야기, 여행 이야기, 군대 이야기 쉴틈이 없다. 저것은 분명 억눌린 속이 내뱉는 모습이다. 대인관계와 배려심이 남다른 평소 그의 모습에서 보면 진원지는 짐작이 간다. 집안 문제일 것이다. 나이를 먹었던 안 먹었던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부부 다툼/싸움을 열심히들 하고 있다. 그게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다만, 그 대처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화로 푸는 방법과 침묵으로 푸는 방법을 말한다.



급기야 취기 어린 그의 오므라진 입에서 지금 냉전 상태라는 이야기를 내뱉고야 만다. 냉전 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국제정치적 대립 관계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 국가들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공산정권 사이에 냉전 구도를 일컫는 심각한 언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강하게 어필을 할 경우가 있으면 이런 언어로서 강함을 표출해 낸다. 집안의 부부사이에 냉전 상태라 함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는 뜻으로 항상 승패는 정해져 있기에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이며 피해는 전적으로 한쪽에서만 지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소 냉전은 핵무기의 경쟁, 우주경쟁 까지 불러일으켰지만 부부의 냉전은 대화거부가 서로의 유일한 무기다. 소통을 막아 상대방의 불편을 압박하여 승리를 잡는 전략이기에 냉전은 곧 대화거부가 상식화되어있다. 그래서 그 위세를 강조하려 무시무시한 냉전상태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롭게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잔뜩 취해 감당하지 못할 별별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임전무에게 충고한답시고 머리를 맞대고 공자의 말씀을 일갈하고 있는 나이 많은 박 부장은 올봄에 차도 뺏긴 적 있고 심지어 지난달에는 카드도 압수당하는 일을 모두가 다 보았는데 그가 지금 충고를 하며 가르치고 있다. 아마 공유된 설움을 함께 폭로하며 상담하는 입장으로 바뀌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가 똑같은 사람들이 부부사이 문제의 상담자 역할을 수시로 번갈아 하는 참 뻔뻔한 낮 두꺼운 사람들이다.


부부싸움은 공자라고 안 하고 대통령이라고 안 하겠는가 다소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이들 에게 공평하게 해당되는 참 재미있는 다툼이다. 때로는 조금 특별한 사람도 있다. 지금 여기서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송 부장이 바로 그다. 그는 항상 우린 부부싸움을 한 번도 해본 역사가 없다고 늘 주장하는 성격 급한 송 부장. 그는 아마 본인이 화를 내는 순간을 기억 못 해서 그럴 것이다. 아니면 그의 가치관 속에 어디까지를 싸움이라 할 것인지 그만의 규정으로 책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름 현명한 자기 보호의 방법일 것 같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 사실, 나도 지금 냉전상태이다. 오래된 결혼기념일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가 대화 거부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하지 않던가, 젊은 시절 크게 싸우고 그 고비도 여러 번 잘도 넘겨왔던 부부싸움. 지금 나이 들어하는 다툼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되겠지만 일단 냉전으로 들어가면 그 기간 동안 여간 일방적으로 불편한 게 아니다. 가급적 냉전으로 들어가지 말고 화끈하게 싸우고 끝내던지 다른 대처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이 들어 화끈하게 싸울 기백도 없고 더욱이 그동안 가지고 있는 패를 다 소진한 터라 꼼짝없이 당할 것 밖에 없기에 이유도 모르는 빠른 사과를 온, 오프라인으로 줄기차게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임전무와 같은 주변의 부류들 에게서 되지도 않은 상담과 격려를 받으며 조금의 위안을 삼는 수밖에 없다.


내가 당하고 또 상담을 해주는 참 이상한 전 사회적 공평한 부부싸움터에 우리가 늘 내던져 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항상 전투태세이다. 평소에는 괜찮던 말도 상황에 따라 심각해지기도 한다. 늘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솔직하게 다 내보이고 살아온 사람들이나 또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살려는 사람들은 평소 대화의 패턴과 예측이 신뢰 속에 가능하니 그나마 싸우더라도 냉전상태 까지는 안 갈 것 같다. 살아보니 그게 최선인 것 같다.


공자 가라사대 보다 그냥 솔직하게 살면서 재미있게 싸우는 방법을 터득해 싸우는 것이 더 낫다. 그 덕분에 삶의 텐션도 자주 올릴 수 있으니. 남녀노소 틈틈이 감당할 즐거운 부부싸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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