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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이야기는 실수가 없다

어학원 오픈식에서 얻은 경험이 삶의 진리가 되었다

by 롱혼 원명호


멀쩡한 회사를 다니다. 뛰쳐나와 학원을 하겠다고 했으니 시작부터 반전이다. 그것도 영어 어학원을 한다고 덤벼 들었다. 사실 그 당시 S그룹 과장이 되려면 TOEIC 720점이 넘어야 했다. 나는 간신히 넘어 과장이 되어 말년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으니 영어 실력은 아마 720점 이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어학원 프랜차이즈는 주어진 학습법으로 강사들이 하기만 하면 된다는 지역 담당의 설득에 과감히 어학원 원장으로 변신을 하였던 것이다.


본사에서 그들의 지역 확장차 찾아준 어학원이 없는 변두리 동네에 위치 좋은 모퉁이 빈 상가를 계약하고 인테리어 까지 마치고 나니 너무 순탄하여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돈만 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순서다. 이제 강사를 모셔오고 본사교육과 오픈광고 그리고 학부모 설명회를 하면서 학생을 모집하는 순서로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인테리어는 진작에 끝났고 오픈 설명회 광고도 인쇄하여 신문 삽지를 부탁하여 보급소에 보냈으니 할 일은 거의 끝났다. 한데 본사교육을 다녀온 강사가 오픈 학원인 줄 몰랐다며 그만두겠다고 떡하니 문자가 날라 왔다 큰일이다. 이미 회사를 다니면서 몸에 익은 준비성으로 후배들에 부탁하여 앰프시설과 홀이 사람이 가득 찼을 때를 대비하여 홀 바깥에서도 볼 수 있게 영상 스크린도 부탁해 놓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 시스템이다. 이제는 물러설 곳도 없다 나와 주임선생님 둘이서 해야 한다. 너무 긴장하여 한동안 잠도 설치다 갑자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에 알바를 고용하여 주차 안내며, 홀 안에 안내를 시켜야겠다고 알바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설명회는 유명어학원 출신의 호감 가는 얼굴에 말도 재미있게 하면서 영어 발음까지 좋으신 선생님이 계시니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나만 진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동안 다른 학원 오픈 설명회를 몇 군데 참관해봤더니 처음 인사만 하면 원장이 그리 나설 일이 별로 없었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학원의 오픈식날이 되었다. 신축 건물이다 보니 언제부터 달려 있었는지 모르지만 옥상에부터 만국기가 여태 펄럭이고 화환들이 늘어서자 그럴싸해 보였다. 지역 담당과 몇몇 원장님 그리고 후배들이 일찍 오셔서 도와주신다. 다과도 배치하고 앰프점검도 마치고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사람들이 안 오신다. 흘깃 바깥을 보니 알바가 할 일이 없어 어깨에 두른 띠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초조해지면서


'아니야, 이건 아니야, 아직 시간이 안되었을 뿐이야'


마음속으로 되네였다. 이때 갑자기 들어오시는 한 학부모님이 너무 반가워서 모두 커피를 들고 달려드니 되려 이분이 당황하여 다시 나가신다. 멘붕의 땀을 닦고 잠시 쉬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저편에서 울먹이는 주임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틀림없는 불안한 예감이다.


‘사고가 났어요, 나는 괜찮은데 보험차 올 때까지 있어야 한데요’


알바들의 황송한 아주 융숭한 개인별 안내를 받은 열 분 정도의 학부모님들이 멀뚱멀뚱 기다리시고 기대에 찬 이웃 원장님들은 뭐라도 배우겠다고 수첩을 들고 노려보고 있고 의기양양한 후배들은 바깥홀까지 나오는 영상을 녹화까지 해 주겠다며 찾아와 부담을 더 얹어준다.


어쩔 수 없이 성화에 식이 시작은 되었고 땀이 젖은 와치셔츠 차림으로 준비된 인사를 하고 나니 주임선생님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래서 갑자기 준비한 것이 회사에 다니면서 6 시그마 강사시절 지루해하는 수강생들을 위해 막간을 이용할 때 틀어주는 동영상과 교양강의가 있어 앞뒤 안 보고 이것을 하였다. 영어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지만 재미있고 남는 것이 있는 검증된 것이다. 조용하게 집중하는 눈망울들을 보며 회사 다닐 때 익숙한 강사로 빙의하여 차분히 하다 보니 30분을 넘기고 이제 학부모들도 가득 찬 것이 보여 본사 담당이 교재설명을 하고 교실투어로 마무리했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자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채로 드러누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학부모들과 주변 원장님들께서 강의에 너무 만족했다고 하면서 영어학원 오픈식에 와서 이렇게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라며 즐거웠다는 반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졸지에 영어를 잘하는 원장의 학원이라고 동네에 소문이 나면서 그동안 어학원이 없던 변두리 학원에서 두 달 만에 수강생 100명이 넘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뒤 본사에도 이 소문이 나자 원장님들 상대로 엉뚱한 별첨의 부가 강의를 해주는 어이없는 일들도 벌어졌었다.


기대를 뒤 없는 예상치 못했을 반전의 강의지만 그들 가슴에 깊이 남게 되면 본래의 방문 취지와 다시 연결되어 기억에 새겨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한 현상이다. 신생학원에 수강생이 100명이 넘어서 복잡해지던 어느 날 수강료를 내려오신 한 학부모님은 같이 오신 다른 분께 나를 학원 설명회 때 들어보니 영어를 너무 잘하시는 원장님이라고 추켜 세우면서 너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난 그날 영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체세에 관한 유머 이야기만 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오해가 직접 다가갔을까 신기했었다.


아슬아슬하고 땀 흘렸던 시작의 추억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기회가 있을 때 가끔 써먹는다. 전혀 엉뚱한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가슴에 남게 하면 명강의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반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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