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눈깨비 내리는 날

날씨를 탓한다

by 롱혼 원명호

겨울에 우산은 청승맞다.

비도 아닌 것이 눈도 아닌 것이 떨어지고 있어 두꺼운 코트와 장갑을 낀 채 어설프게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간다.


원래 우산은 낭만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비가 오면 진창을 걷기 싫어 집안에 틀여 박혀있어야 했는데 우산이 있어 밖으로 나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빠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했다. 그래서 우산의 발명이 낭만주의의 시작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도 비가 올 때 이야기고 한 겨울 눈이 내리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묵직한 발걸음이 또 다른 낭만의 추억을 주기에 겨울 우산은 거추장스럽다.


오늘 같이 물먹은 눈이 질척거리며 떨어질 때는 슬러시로 변한 도로 가는 조심 해야 한다. 잘못 발을 디뎠다가 간 웅덩이에 빠져 낭패를 보기 십상이고 또 피한다고 어물거리다가는 지나가는 차에 검은 슬러시 한방 맞고는 투덜대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런 날을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라고 한다.


빗방울이나 녹은 눈송이가 대기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지표면 근처에 있는 어는점 아래의 공기층을 지나면서 진눈깨비로 바뀌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날은 마음도 불안정해져서 조심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날씨 탓을 하며 염려스러워하고 있으려니 산골에 어둠이 내려앉듯 갑자기 마음이 뒤숭숭하며 변덕의 갈등이 찾아온다.


3월 말 새집에 입주를 위해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 업체 다섯 군데나 둘러보고 선택한 업체에 대해 불신이 찾아왔다.

‘그 사장님 고집이 세어 보이던데 난 그런 분을 피했으면 해’

아내의 말 한마다가 귀에 맴돌더니 다른 곳을 선택할걸 잘못했다고 가슴까지 벌름거리며 갈등이 오른다. 거기에다 조촐하게 모이는 회사 OB 단체 카톡방에 한 녀석이 꾸벅대며 굽신거리는 이모티콘을 앞세워 신년회를 갑자기 연기를 하자고 한다. 고향에 어머님이 편찮으시다고 급히 가봐야 한다고 했다. 조용히 혼자 빠지면 될 일을 이렇게 흔들어 놓아 질책을 받아야 할까.


역시나 날씨 탓이다. 진눈깨비가 아니었다면 오락가락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애먼 날씨를 탓하지만


우리의 삶은 분명 맑은 날과 흐린 날, 비가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똑 부러지게 분명해야 한다. 진눈깨비처럼 이러지 저러지 못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도, 연옥 그리고 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