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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 연옥 그리고 평상

나의 글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by 롱혼 원명호

어둑한 시간 새벽 운동을 나서는데 아파트 귀퉁이 평상(平床) 위로 조명 불빛이 환하다. 늘 지나쳤지만 오늘 더 자세하게 눈에 들어온다. 추운 겨울날 관심 없는 평상인데 누굴 기다리고 있는지 새벽부터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있다. 아마 지친 마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가던 길을 멈추고 평상에 걸터앉아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평상(平床)은 공평하면서도 때로는 홀대를 받기도 하고 또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당하는 변화무쌍한 삶의 중간지대이다. 용도도 추억도 참 다양하다. 굳이 편안한 방을 마다하고 밥상 들고 나와 밥을 먹기도 하고,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밤 까기 등 작은 부업을 가지고 모여 가내공장이 되기고 하고, 벌러덩 드러누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기도 하고, 큰소리로 다투기도 한다 그리고 비집고 틀어 앉아야만 소속감을 찾는 별것 아니면서도 끼고 싶은 별난 장소이다. 이렇듯 식당으로, 회의실로, 사랑방으로 나만의 비밀장소로 그리고 약속의 장소로 모두를 포용해 준다.


하지만 평상에는 질서와 특권도 있다. 엄마가 앉으면 쪼르륵 아이들은 서로 평상 위를 차지하려 난리를 피우고, 동네이장이 앉으면 지나가던 아쉬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으시면 젊은이들은 자리를 피했고, 손님이 오시면 독차지하신다. 어쩌다 시끌 법석 웃고 떠들면 오지랖 아줌마가 털썩 앉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평상은 사람의 감정을 잘 다스려준다. 술상이라도 펼치면 흥에 겨워 노래도 절로 나고, 밤하늘 별을 볼라치면 촉촉한 감성에 시인이 되고, 상처받은 사람의 흐느낌에 솔솔바람 불러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그리고 다투었던 사람도 먹먹하여 끄트머리 떨어져 앉았다가 감성이 동하여 말을 트게 하는 곳이다.


삼한시대의 소도, 교회의 연옥 같은 모든 것의 중간지대로 포용해 주는 평상(平床). 새벽 운동 길에 사진 한 장 담고는 슬며시 차디찬 평상에 다시 앉아 본다. 조용한 외로움을 바람이 대신하여 한여름 시끄럽던 메아리를 불러오니 따스한 감성이 올라온다. 아마 이 추운 겨울 찾아올 사람도 없는 새벽에 불까지 켜 놓은 것은 힘든 세상 날카로움에 베이고 찔린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삶의 위안과 용기를 주려 열려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나의 글 쓰는 이유와 닮았다.


나의 글쓰기는 평상(平床)과 같이 삶의 중간지대로서 나를 정리해 주고 다시 재 정비시켜 내보내 준다. 또 감성의 촉각을 곧추세워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는 통찰의 힘을 준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그 힘으로 알찬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배려와 포용으로 세상과 공유하며 남기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나이가 많던, 어리던, 착하던, 불량하던, 한가하던, 바쁘던 삭막한 회색의 아파트 속 지나며 다친 마음의 상처를 우리의 중간지대인 평상(平床) 위에 살짝 내려놓고 갔으면 한다. 그러면 누군가는 글을 쓰며 또 누군가는 사진으로 담아 올여름 평상 위에서 활활 불살라 버려 줄 테니까 그래서 나도 조용히 마음 한 장 내려놓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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