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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Feb 25. 2024

60은 아직 어리다니까요

괜히 스틸에서 그라파이트로 바꿨나?

골프 연습장에 가면 내 골프채 헤드에서 볼과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제법 신경 쓰일 때도 있다. 왜 이러지?


환갑이 되기 전에 아내가 물었다. 환갑 기념으로 뭘 해줄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골프채를 바꿔 달라고 했다. 그것도 주변 친구들의 예를 들며 다들 그렇게 하더라고 확신까지 심어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외쳤건만 작년 환갑을 맞아 아이들은 고급시계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아버지께서 지금껏 살아오시며 명품이 단 한 개도 없으시더라는 이유로 둘이서 결정했다고 했다. 아이고 이놈들아 좀 물어보고 하지 이런 비싼 것을,,


고맙게 받고는 대신 골프채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몇 달 지나 아내와 기흥 롯데프리미엄 아웃렛을 갔는데 골프숍을 찾더니 하나 사라고 한다. 갑자기?

속으로 웃음을 숨기며 진지한 시타를 몇 번 하니 옆에 계신 매니저의 입바른 칭찬이 쏟아진다. 이럴 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 현실적 결정을 해야 한다. 내가 골프를 얼마나 치겠냐 그리고 앞으로 힘이 떨어진다 나름의 논리로 그라파이트 채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짐에 운동을 다니며 혈기가 왕성해져 그라파이트 헤드가 아프다고 소리를 다. 인생의 절정인 60대를 무시했다.


"내가 연세대 교수로 처음 갈 때 3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는 환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내 인생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인생을 두 단계로 봤어요. 30세까지는 교육을 받고, 나머지 30년은 직장에서 일한다. 그럼 인생이 끝난다.”

"막상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어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랬습니다. 글도 더 잘 쓰게 되고, 사상도 올라가게 되고, 존경도 받게 되더군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 세부 터입니다. 나는 늘 말합니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부터 온다. “

- 100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교수


인생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심지어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140여 세까지 산다고 하며 TIME 지 표지에 대문짝만 하게 실린 적도 있다. 물론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겠지만 현실적으로도 의사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기에 100세 시대라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다니고 있는 문예창작 교실에 회장을 맡고 계신 분은 80세가 넘으셨다. 처음에 깜짝 놀랐다. 청바지에 깔끔한 스웨터를 입고 은백색의 머리를 넘기며 반지르르 팽팽한 얼굴과 기력 충만하신 움직임 그리고 연륜에 쌓인 점잖은 말씀을 하시는 멋진 분 이시다. 또한 학생으로서 시사적인 것부터 낭만이 넘실거리는 글들로 여유로운 삶의 절정을 보여 주신다. 한 번은 비가 오는 날 그분의 차를 잠시 얻어 탈기회가 있었다. 깔끔한 실내와 맑은 향기에 뭐라 좋은 말을 얼른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시동을 걸어 유독 좁은 학교 지하 주차장에서 능숙하게 차를 몰고 나오시는 멋스러움에 존경심이 하나 추가 되었다.

나도 렇게 늙었으면 좋겠다고


어쨌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김형석 교수의 말씀처럼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이 시작된다는  60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뭐든 해야 한다. '마음은 청춘'이란 말이 이렇게나 정확하게 가슴에 콕 박힐 줄이야


일본인 컨설턴트인 혼다겐 씨는 '60대에는 20대에 꼭 하고 싶었던 것을 실천에 옮겨라'라고 했다. 가슴이 뛰는 말이다. 20대에 꼭 하고 싶었던 것, 늦으나마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친구관계를 재 정리' 하라고 한다. 친구에 연령제한을 두지 말고 찾으라 한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가 되었다는 말이다. 비록 낯을 가리고 수줍어하는' I '형이지만 60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에 기대어 조금 뻔뻔해도 되지 않을까? 어디 참여할 만한 글 모임이 없을까?




이렇듯 60을 너무 무시했다. 지레 겁먹고 벌써 골프채를 그라파이터로 바꾸다니 하지만 오히려 필드에서 마음 편다. 채에 의지해 살살 쳐도 된다는 생각에 힘이 안 들어간다. 더 잘 되는 것 같다.


그래 이것이다.


이제 내가 나서는 길은 급할 것도 잘해야 할 것도 없다. 뻔뻔스레 힘 빼고 여유를 가지고 뭐든 배워 나가자.

일요일 아침 갑작스레 정신이 번쩍 든다.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뭐든지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립니다. 사람들은 몸이 늙으면 정신이 따라서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자기 노력에 따라 정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때는 몸이 정신을 따라옵니다.”

“강연 차 지방에 갈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럼 거기서 지방 유지들을 만납니다. 장관 지낸 사람, 교수 지낸 사람들도 만납니다.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나보다 정신이 늙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장관직 끝내고, 정년퇴직하고 일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더군요. 일과 공부를 안 하면 몸도 마음도 빨리 늙습니다.”

- 100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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