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가 일상을 점령했고 핸드폰이 나의 아바타로 살면서 기계들이 날뛰는 통에 정신 차릴 시간조차 없다. 모르는 게 약이라 하지만 지금은 모르면 끝이란다. 모든 것이 중간은 생략되고 과정도 무시하고 끝없는 경쟁으로 정점만 치닫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이쯤에서 추억의 감성을 더 잃기 전에 손 놓고 남은 감성이라도 끌어모아 살아가야 하나
지금까지 자동화장비를 개발하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살아오며 모든 삶에서 편리성, 생산성, 효율성만 쫓아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관성에 따른 정신은 세상에 뒤처지면 안 된다고 퇴직 후에도 Chat GPT, NFT, 전자지갑, AI 관련 공부와 실천에 매진하며 정확한 의미도 모르면서 남들을 쫓아가는 FOMO증후군 걸려 그들이 가리키는 한 곳만 바라보며 들뛰고 왔다.
잠시 틈을 내서 미국아이들 집에 다니러 왔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많은 백수인데 여기서는 더 늘어지며시간이 많아졌다. 아마도 자유스러운 외부 활동의 제약이 따른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초조한 마음은 더욱 무언가 하고 있어야겠다는 압박에 이리저리 핸드폰을 서치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고교후배의 칼럼을 보게 되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칼럼으로 주된 내용은 2011년에 출간했다는 '모든 것은 빛난다' 세속의 시대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서양고전이라는 부제로 철학자 두 분이 쓴 책을 소개하면서 쓴 글이 눈이 번쩍 뜨인다.
주된 내용은 테크놀로지를 공리(公理)로 전제하고는 그것의 목적으로 어느 분 야든 누구든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것 이라며 상반되는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나는 예를 들어 낯선 곳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GPS처럼 힘든 일들을 쉽게 만들어서 우리의 삶을 향상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예를 들어 GPS에 의존 탓으로 현재위치, 주변 도로표지판 그리고 동서남북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 주변에 대한 이해가 줄어드는 의미의 가능성을 더 축소한다고 했다.
기술을 숙련하면서 축적할 수 있는 차이를 사소한 것으로 덮어버린다. 운전자 아니, 우리에게 세계는 점점 단조로워진다. 세계가 단조 로워질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도 단조로워진다. 우리가 단조로운 존재가 될수록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 철학자들의 제시가 실감 났다. 그중에서 '테크놀로지 발달로 의미의 가능성을 더 축소한다'는 말에 꽂혔다. 여기에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해법이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철학자도 앞으로의 삶에 힌트를 주며. 답은 '보는 것을배우는 데있다'라고 했다.
잠시 폰을 덮고 긴 사색을 하며 그 철학자들의 결론의 글을 나름 거꾸로 해석해 봤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가 다채로운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고 우리의 이해가 다채로워지는 것은 세계가 다채로워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세계가 다채로워지는 것은 기술 숙련하면서 축척되수 있는 차이를 세세하게 느껴본다는 것이라 느꼈다.
해외로 여행을 나오니 눈과 마음이 여유롭게 즐겁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에서는 핸드폰을 잠시 멈추고 또 차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공공차량이나 다른 사람의 차를 이용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많다 또 집 근처에서는 급할 것도 없이 걸어 다니다 보니 스쳐 지나던 것도 자세히 보게 된다. 화단의 꽃들, 그리고 경쟁하듯 널려진 잔디 냄새 또 가로수의 주변 널브러진 낙엽, 지나치며 건네는 낯선 이의 손인사등 일상에 못 보고 건너뛰던 느낌들에서 점점 오감이 살아난다.
소위 앞선 사람들이라며 온갖 유튜브며 SNS에서 FOMO로 위협하며 재촉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무게만큼 안정을 되찾자 이렇게 잠시 멈춰 서서 다채로운 주변을 보면서 살아가도 우리는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대신 그들이 못 가진 세상의 다채로움을 느끼며 보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 테크놀로지 시대 세속에서 의미를 찾아 잘 살아가는 진정 해법은 '보는 법'이었으며 바로 이것이 글쓰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특권이자 특혜였다.
* FOMO ( Fear Of Missing Out): 다른 사람들이 얻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