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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에서 춤추기

창작의 자유와 저작권의 경계에 대한 균형을 잡아보려 한다.

by AI러 이채문


사실 이 글을 쓰고 나서 좀 생각이 많아졌다.


뭔가 복합적인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아서 이와 같이 글을 작성해보았다.





"이건 패러디야, 오마주야"라고 말하며 논란이 된 웹툰을 보았다. 유명한 일본 만화의 장면과 거의 똑같은 구도였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해석을 담았다고 주장했다. 댓글창은 뜨거웠다. "이건 명백한 표절이다"와 "창작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나는 그 논쟁을 보며 생각했다. 창작의 자유와 저작권 보호, 이 둘 사이의 경계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무언가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셰익스피어도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고,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도 대부분 기존 동화를 각색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창작물은 어느 정도 '베끼기'의 연장선에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영감과 표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변화'와 '창의성'에 있다. 기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되, 자신만의 색깔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과 단순히 베껴오는 것은 다르다.


문제는 그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점이다. 특히 AI가 등장하면서 이 경계는 더욱 흐려졌다. AI가 수십만 개의 작품을 학습해서 만들어낸 그림이나 글은 과연 창작물일까, 아니면 거대한 표절의 결과물일까?


최근 AI 그림을 놓고 벌어진 논쟁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질문에 부딪혔다. 인간 작가도 다양한 작품을 보고 배우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간다. 그런데 AI가 하는 '학습'과 인간이 하는 '학습'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창작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한다. "예술에는 경계가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이 창작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로 다른 사람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반대로 저작권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면 창작 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패러디나 오마주 같은 건전한 창작 형태까지 금지된다면, 문화는 정체될 것이다. 기존 작품에 대한 재해석이나 비판적 접근도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나는 '존중'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원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 그리고 단순한 복제가 아닌, 자신만의 해석과 창의성을 더하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웹툰 작가가 유명한 명화의 구도를 차용했다고 하자. 만약 그 작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라고 밝히고, 실제로 자신만의 스토리와 메시지를 담았다면 이는 정당한 창작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언급 없이 구도만 베끼고 자신의 독창적 아이디어인 양 포장한다면 문제가 된다.


중요한 것은 투명성과 정직성이다.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어떤 부분을 참고했는지 솔직하게 밝히는 것. 그리고 단순한 모방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창조'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상업적 이익이 개입되는 순간 기준은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취미로 하는 팬아트와 돈을 벌기 위한 상업적 창작물은 다른 잣대로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창작물로 돈을 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 한다.


창작의 자유와 저작권 보호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될 때 창작자들이 안심하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고, 그 결과 더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창작의 자유가 보장될 때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석이 등장하고, 문화는 발전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다. 남의 것을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것도, 지나치게 경직된 잣대로 모든 것을 금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계선에서 춤추듯, 섬세하고 신중하게 그 선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 경계선은 법으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창작자들의 양심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경계선에서 고민하며 창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고민 자체가 건전한 창작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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