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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AI 전환의 갈림길에서

‘힘’의 종말과 ‘능력’의 재편

by AI러 이채문

1. 과거의 ‘력’, 현재의 ‘능력’ — 인텔의 몰락은 힘의 고갈이 아닌 방향의 붕괴다


인텔(Intel)은 오랫동안 반도체 산업에서 ‘력(力)’의 상징이었다. 20세기 후반, CPU 설계와 제조의 핵심을 장악한 이 회사는 기술적 우위, 자본력, 시장 지배력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완전한 힘’을 보유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인텔 스스로가 “우리는 상위 10대 반도체 회사에도 들지 못한다”고 자인하게 된 현재, 이는 단순한 기술력 후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힘이란 그 자체로 방향 없이 존재할 수 있지만, 능력이란 반드시 목적지와 궤적을 내포해야 한다. 인텔은 오랫동안 기술의 힘을 기반으로 산업을 주도했지만, 급변하는 AI 시대에서 그 힘을 능력으로 전환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인텔의 ‘방향성 상실’은 단지 시장 점유율의 하락이 아닌, 존재론적 위기라 할 수 있다.


CEO 립부 탄은 “AI 훈련 시장에서 우리는 너무 늦었다”며 사실상 엔비디아에 대한 추격을 포기했다. 이 발언은 전략적 회피라기보다, 인텔이 가진 ‘기존의 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한 첫 선언이다. 과거의 기술이 곧 경쟁력이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기술이 맥락과 속도, 생태계와 연결되어야만 능력으로 전환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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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조의 전환은 곧 철학의 전환 — '기술의 중심'에서 '경쟁의 외곽'으로


인텔이 발표한 구조조정은 단순한 인원 감축이 아니다. 7월 중순까지 오리건, 캘리포니아, 이스라엘 등에서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절차는 기술적 위기만이 아니라, 전략적 중심축의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CPU 중심의 컴퓨팅 구조 안에서 기술적 우위를 통해 시장을 주도했지만, 지금의 AI 패러다임은 병렬연산, 대규모 훈련, 분산처리, 그리고 반도체-소프트웨어 간의 수직 통합을 요구한다.


이 전환의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이미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한 엔비디아는 AI 연산 칩셋 시장의 절대강자가 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제품 우위를 넘어 생태계 장악력을 의미한다. CUDA, TensorRT 등 자체 생태계는 개발자와 연구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전한 통합을 구현했다.


반면 인텔은 여전히 CPU 기반의 설계, 전통적 제조 방식, 폐쇄적 플랫폼이라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A 공정이라는 차세대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기반으로 시장에서 실질적 가시적 성과를 낸 사례는 드물다. 이는 기술의 ‘잠재력’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능력으로 발현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능력이란 단순한 성능이 아니라, 성능이 의미를 만나는 지점에 존재한다. 즉, 어떤 기술이 시대의 흐름과 정확히 맞물리는 지점에서만 ‘능력’으로 작동하며, 그 외의 경우는 잠재된 힘으로만 남게 된다. 인텔의 현재는 바로 그 ‘의미 없는 힘’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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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방향 없는 힘은 곧 무의미 — 엣지 AI와 ‘가능한 능력’의 모색


그렇다면 인텔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CEO 립부 탄은 엣지 AI, 즉 PC나 현장 기기 자체에 AI 기능을 내장하는 방식의 틈새시장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는 본질적으로 ‘현재 가용한 힘’의 방향 재설정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략이 중심에서 중심으로의 이동이었다면, 이제는 주변에서 중심으로의 역진을 모색하는 것이다.


AI 훈련 시장에서의 패배는 인텔이 ‘힘의 크기’에서 밀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힘이 제때 적절한 형태로 변환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능력의 결여를 보여준 것이다. 엣지 AI는 바로 그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 경량화된 연산 구조, 실시간 처리와 저전력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인텔은 자신이 보유한 CPU 기반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AI 에이전트 연구로의 확장 역시 능력의 재정의에 가깝다. AI가 단지 ‘정보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맥락 기반 조언을 제공하고, 자율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는 인텔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전선일 수 있다.


결국 인텔의 위기는 능력의 철학적 본질을 다시 묻게 한다. ‘능력’이란, 과거의 힘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되며, 그 전환이 없다면 능력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향성 없는 기술은 무의미하고, 기술의 의미 없는 반복은 산업의 죽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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