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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사원 4.0의 가능성

'작은 힘'에서 '효율의 능력'으로 진화한 한국형 AI 프론티어

by AI러 이채문

1. ‘크기’가 아닌 ‘방향성’ — AI 능력의 본질을 다시 묻다


인공지능 기술의 경쟁은 오랫동안 ‘크기’의 전쟁이었다. 파라미터 수, GPU 자원, 데이터셋의 양 같은 요소들은 모두 ‘규모의 위력’을 보여주는 지표였으며, 능력은 곧 물리적 힘의 집합으로 오인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은 단지 크기보다 ‘구조’와 ‘방향성’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이 공개한 ‘엑사원 4.0(EXAONE 4.0)’은 그 전환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엑사원 4.0은 매개변수 320억 개(32B)라는 중형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670억 개 이상을 탑재한 글로벌 대형 모델 ‘딥시크-R1’, 235B 규모의 ‘큐원3’와 유사하거나 그 이상에 근접한 성능을 보였다. 크기는 다섯 배에서 열 배 이상 작지만, 결과적으로 AI의 핵심 역량인 자연어 처리, 과학·수학 문제 해결, 코딩 능력 등에서 세계 최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이로써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능력이란 단지 '힘의 총합'인가, 아니면 '의미 있는 작동을 구현할 수 있는 구조적 역량'인가? 엑사원은 후자의 정의를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이는 기술의 본질이 이제 ‘양’이 아니라 ‘형식’과 ‘맥락’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KakaoTalk_20250718_133848316.png LG홈페이지




2. 하이브리드 구조, 효율의 재발명 — 추론과 비추론의 결합이 만든 능력


엑사원 4.0이 가진 진정한 혁신은 그 내부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이 모델은 ‘추론모델(Exaone Deep)’과 ‘비추론모델(Exaone Base)’의 하이브리드 통합을 바탕으로 한다. 추론 모델이 문제 해결, 문맥 추론, 고차 인지 능력에 집중하는 반면, 비추론 모델은 패턴 기억과 정적인 지식 회상에 특화된다. 양자의 통합은 ‘이해’와 ‘암기’, ‘논리’와 ‘데이터 재현’이라는 이중 구조를 생성하며, 이는 인간 사고의 양면성과도 유사하다.


이 하이브리드 구조는 곧 ‘기능의 합’이 아닌 ‘기능 간 조화’라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능력이란 여러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들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통합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체계에 있다. 엑사원 4.0은 그 체계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AI 성능 향상이 아니라, ‘기술적 인지의 조율 능력’을 설계한 결과이다.


특히, 온디바이스 모델(1.2B)의 효율성은 주목할 만하다. GPT-4o 미니보다 적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수학, 코딩, 과학 등 핵심 지능 작업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단지 경량화를 넘어, ‘적절한 연산 분배’라는 개념이 LLM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효율은 더 이상 성능 저하의 결과가 아니며, 구조화된 능력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KakaoTalk_20250718_133827216.png LG 허깅페이스



3. 결론: 엑사원은 ‘한국형’ 기술이 아니라, ‘구조화된 철학’이다


기술은 언제나 특정한 방향성을 동반한다. 그 방향성이 곧 기술의 철학이며, 철학이 있는 기술만이 ‘정체성’을 갖는다. LG AI연구원의 엑사원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다. 그것은 ‘크기 중심 패권주의’에서 벗어나 ‘의미 중심 성과주의’로 기술 담론을 이끄는 전환의 실험이다.


엑사원 4.0은 한국형 AI라는 한정된 정체성을 넘어서, 기술이 반드시 크기를 키워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신화를 반박하며, 작지만 구조화된 시스템이 오히려 더 많은 실질적 활용 가능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공개 가중치(오픈 웨이트) 기반 배포를 통해 학술 및 연구 생태계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프렌들리AI와 협력한 상용 API 형태의 배포는 기술의 실질적 확산을 가능케 하고 있다.


기술은 결국 ‘사용될 수 있는 힘’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방향성과 조화를 가질 때 비로소 능력이 된다. 엑사원 4.0은 그러한 구조적 조화, 응용 가능성, 그리고 효율성의 총체로서 ‘능력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엑사원이 경쟁하는 것은 단지 모델 성능이 아니라, 기술 철학의 경쟁이다. 힘은 많지만 무거운 기술이냐, 작지만 정확한 능력이냐. 이제 그 기준은 바뀌고 있다. 엑사원은 그 바뀐 기준의 가장 선두에서, 기술의 존재 의미를 다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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