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실력’, 그리고 ‘선택’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은 본질적으로 ‘확장성’을 추구한다. 모델은 커지고, 데이터는 쌓이며, 계산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이 확장성의 구조 안에서, 인간의 조직은 과연 동일한 비율로 성장할 수 있는가? 오픈AI의 전직 엔지니어 캘빈 프렌치-오웬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경험적 대답을 블로그에 남겼다.
프렌치-오웬은 지난해 오픈AI에 입사해, 코딩 에이전트 ‘코덱스(Codex)’를 7주 만에 출시한 핵심 팀원이다. 그가 떠난 것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회고록은 단순한 이직 보고서가 아닌, 오픈AI 내부 구조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철학적 고백에 가깝다.
그는 입사 당시 직원 수가 약 1000명에 불과했지만, 불과 1년 만에 3000명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조직이 세 배 이상 팽창한 현실은 정보 공유 체계, 채용 시스템, 제품 관리 방식 등 전 영역에 걸쳐 혼란을 야기했다. 그러나 오픈AI는 이 와중에도 일종의 '다중 스타트업 집합체' 형태로 운영되었다. 거대한 기업이 아닌,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소규모 셀들의 느슨한 연합체였다는 것이다.
이 구조는 곧 효율성과 혼란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나뉜다. 빠른 실행력, 유연한 전략 전환, 개별 팀의 실험적 자율성이 장점이었다. 반면 조직 전체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통합하는 중심축은 느슨하거나, 때때로 실종 상태였다. 오픈AI가 단일한 철학이나 비전으로 수렴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오늘날의 AI 산업 전반에 적용되는 보편적 구조이기도 하다.
프렌치-오웬은 오픈AI를 ‘실력 중심의 조직’으로 묘사하였다. “정치적인 책략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질과 실행력으로 리더가 결정된다”는 그의 발언은 실리콘밸리 기술조직의 이상적 모델을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단순한 찬사라기보다, AI 조직이 안고 있는 긴장 구조를 드러내는 은유로 읽을 수 있다.
그의 팀은 단 17명의 구성원이었으며, 이들은 7주 동안 잠을 줄여가며 코덱스를 출시하였다. 이처럼 고밀도의 작업 방식은 오픈AI가 소수정예 집단 중심의 프로젝트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적인 대기업의 관료적 흐름과는 차별화된 장점이지만, 반대로 극단적인 속도와 몰입을 전제로 한다.
기술은 실력으로 증명되지만, 실력은 결국 인간의 시간과 체력, 감정의 자산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프렌치-오웬의 글이 품고 있는 철학적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않았고, 다만 진지하게 옳은 일을 하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기술 조직에서 종종 간과되는 ‘도덕적 리더십’의 단초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더불어 그는 챗GPT 같은 제품이 사이드바에 표시되는 것만으로 전 세계적인 반응을 끌어낸 경험을 “마법 같았다”고 표현한다. 이는 기술이 인간 감각을 초월하는 속도로 사회를 진동시키는 과정을 경험한 내부자의 솔직한 경외심이다. 즉, 그는 AI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현상’ 그 자체가 되었다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의 회고는 단순한 관찰이 아닌, 스스로 내린 결론으로 이어진다. 오픈AI는 사무실 내에서 매우 엄격한 보안 체계를 운용하며, 외부 반응, 특히 트위터(X)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는 기술 조직이 ‘기밀성’과 ‘공개성’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원칙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렌치-오웬은 오픈AI가 ‘안전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외부의 시선이 오해라고 반박했다. 개발자들은 수억 명이 챗봇으로 의학적 조언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으며, 그만큼 윤리와 안전을 더 진중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내부 비판과 외부 인식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로도 읽힌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픈AI를 ‘로스앨러모스(미국 핵무기 연구소)’에 비유하였다. 이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과학자와 연구자들이 모여 첨단 기술을 탐구하고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비유는 오픈AI가 단지 제품을 출시하는 기술 스타트업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적 변화를 이끌고자 하는 연구 공동체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프렌치-오웬은 결국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기업 문화가 자신에게 맞지 않을까봐 처음엔 망설였지만, “오픈AI에서 일한 것은 최고의 선택 중 하나였다”고 회상하며 글을 마친다. 이는 조직을 떠나면서 남긴 ‘자기 정당화’이자, 기술자 개인이 기술 공동체에서 느끼는 ‘자율과 책임의 균형’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