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들이 만들어 낸 슬픈 맛.
아주버님께서 한국 치킨이 맛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신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유수의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서 일하던 인재들이 40대에 명예퇴직을 한 후 방황하다가 더러 치킨집을 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한국과 세계의 무대에서 일하던 훌륭한 인재들이 어떻게 하면 치킨을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골몰하며 경쟁하다 보니, 그 맛이 세계 최고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이셨다.
아주버님의 말씀이 어디까지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치킨은 맛있다. 한국 치킨은 전 세계의 제너럴 한 치킨 메뉴의 범주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타국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게다가 다양하기까지 한, 넘사벽의 맛을 가지고 있다
몇백 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월미도로 몰려가 일제히 치킨을 시켜먹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인기 한국 드라마에 나온 치킨과 맥주의 조합을 따라 하려는 세계의 팬들이 많다. 치맥은 그들에게도 고유어가 되어 버려서 외국인 친구들도 치킨 앤 비어라고 하지 않고 치맥이라고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한류 열풍이 강한 필리핀에도 한국식 치킨 체인 레스토랑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본촌 치킨이다. 갈비탕이나 비빔밥 같은 한국 음식도 사이드 메뉴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본촌이 원래 다른 나라에서 시작되어 필리핀까지 진출한 체인이라는데, 시작할 땐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필리핀에서는 한국의 맛을 흉내만 냈을 뿐 재현해냈다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필리핀 사람들은 많이 찾아 성업 중이다. 한국 치킨 맛을 아는 한인들은 가지 않지만.
한국에 2년 만에 돌아와 자의로 시켜먹은 음식이 바로 치킨이다. 쿠팡 이츠에서 시켰는데 다양한 체인과 맛의 종류가 있어 갈피를 못 잡다가 결국 멕시카나의 후라이드 순살 치킨 한 마리에 고추 튀김, 새우튀김, 치즈볼을 추가했고 갈릭소스도 추가했다. 자가격리 첫날, 새벽에 입국하여 짐 다 풀고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코로나 테스트로 심신이 피곤한 때였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던 멕시카나 치킨은 예상 배달 시간 보다도 훨씬 이르게 도착했다. 온 가족이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러나 그 피곤은 치킨을 한 입 배어무는 순간 사라졌다. 2년 동안 잊고 있었던, 그러나 나의 페이보릿, 그 한국 치킨의 짭짤하면서도 적당히 기름진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시킨 모든 메뉴가 맛있었다. 이젠 다소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고양이들도 발아래 와서 조금만 나눠 달라고 시위를 했으며 다섯 살 난 은찬이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든 사이드 메뉴가 맛있었지만 그중에 단연 으뜸은 역시 치킨무다. 느끼할 때마다 하나씩 집어 입에 넣으면, 특유의 시큼한 단맛으로 기름기를 중화시켜 한 조각 더 도전할 수 있게 해 줬다. 이 치킨무야말로 한국의 치킨을 세계 모두의 치킨보다 더 특별하게 해주는 존재다.
한국 사람들은 이 맛있는 치킨을 매일 먹고 산단 말인가. 같은 한국인이지만 타향살이를 오래 하여 맛을 잊었던 나는 치킨을 먹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이 맛을 한국인들만 독점하다니 불공평하다. 불공평하지만 맛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서의 첫날 저녁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
남은 6개월 동안 한국 치킨의 모든 맛을 섭렵할 생각을 하니 행복한 기분이 든다. 비록, 한국의 인재들이 고심하여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슬픈 배경이 있는 음식이지만. 타향살이에 지친 이민자에게는, 이제 고향에 진짜 돌아왔음이 사무치게 느껴지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