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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maker Sep 24. 2021

필리핀과 한국의 화법

대화의 기본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입니다.

국문과로 들어갔지만 사회학과로 편입한 나는, 주로 토론식으로 진행하는 수업을 많이 들었다. 전공수업은 모두 토론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논제에 대해 입장을 나누어 공격하고 공격받는 것에 익숙했다.


   토론 수업을 통해 논리적으로 주장을 펴는 기술을 익혔다. 입장을 정하면 모든 것을 그 기준으로 바라보고 공격하고 방어해야 했다. 상대방의 공격에 심리적으로 흔들리면 지는 거다. 행여 감정적인 동요가 있더라도 표현하지 않고 허점을 노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논리를 펼쳐 나갔다. 타과 학생들이 우리 수업을 들으면, 부들부들 떨다가 발표를 망치고 자기를 공격한 상대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보복하려고 했다. 늘 토론을 하는 우리 과 학생들은, 격렬한 논쟁을 하다가도 수업 종이 울리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교실 문을 나섰다.




  문제는 그때 갈고닦은 기술을 일상생활에서도 써먹었다는 것이다. 소싯적 나의 별명은 '환불의 여왕'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센 언니 네 명의 여성그룹의 이름을 '환불 원정대'로 지었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빈틈없는 논리와 센 주장 앞에서 온라인몰이나 오프라인 몰의 판매자들은 굴복하고 백이면 백 환불을 해줬다. 절대 내가 지는 법은 없었다. 단기선교사 시절 알았던 한 전도사님은 내 별명을 '제갈공명'이라고 지어줬다.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지만 세치 혀로만 사람을 죽인다는 이유였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 예비학교를 들었을 때에 부부싸움을 주제로 강사 분은 남성 여성 파이터를 뽑아 말싸움을 시켰다. 구남친의 강력한 추천으로 여성 대표로 나가 몇 마디 싸움 끝에 K.O 패를 먹였다. 남성 파이터 대표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셨던 레바논 선교사님이셨다. 수강생들은 모두 와아, 하고 박수를 치며 내 남자 친구 신분으로 그곳에 와 있던 현 남편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이겼던 내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은 바로 필리핀에서부터 였다. 거기선 도무지 내 방법이 먹히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서는 늘 호구 그룹에 발을 담그고 있던 남편의 방법이 먹혔다. 남편은 나와 아주 다른 성격의 파이터였다. 파이터라 칭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상대방의 뻔히 보이는 사기와 거짓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해줬다. 부드럽게 존중하고 경청하는 태도로 끝까지 듣지만 절대 굴하지 않고 끈기 있게 자신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그러면 환불 및 취소가 그렇게 어렵다는 필리핀에서 100퍼센트 환불을 받아낼 수 있었다. 상급 매니저의 정성 어린 사과 메일과 선물은 덤이었다. 필리핀에서 환불의 킹은 바로 남편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히야'라는 것이 존재한다. (필리피노의 ‘히야 대해서는, 매거진 ‘문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기 ‘히야,   바라봐에서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존중해줘야 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은 먹히지 않는다. 허점을 보고 공격해도 굴복하지 않는다. 절대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필리핀에서 나의 타고난 파이터 근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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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질이 정반대인 내가 남편처럼 될 수는 없었다. 언제나 웃으며 존중하는 태도를 끝까지 취하고 상대방을 몰아세우지 않는 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웃는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은 농담처럼 이라도 분명하게 말한다. 그런 경우, 논지는 먹히고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 모두 웃으면서도 통쾌한 결말을 얻게 된다. 어찌 됐건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셈이니 화병에도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문화가 정반대인 나라에서, 익숙한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고 그들의 방법을 익히게 되는 과정에 나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술로나마 터득한 웃으며 존중하는 태도는 정말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할 수 있도록 내 마음까지 바꾸어주었다. "내가 옳으니 네가 꿇어" 하던 태도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누가 옳은 게 뭐가 중요한가."라는 태도로까지 변모하게 되었다.




  한국에 입국하는 길에 길목마다 설치된 "욕설을 금지해주세요"라는 푯말은 한국에 돌아온 시차를 분명하게 전달해주었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에 욕설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약간 언성을 높이는 사람만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막내 동생 같은 국군 장병들이 새벽에도 나와 봉사를 하고 있는 공항에서 곳곳마다 붙여진 "욕설 금지" 푯말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 정도로 충격이었다.


  이제는 한국보다 필리핀의 문화에 익숙한 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한국문화에 적응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대화의 기본 원칙,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만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어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이전보다 효과적으로 입장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어느 순간에도 갑이 아닌 태도로 배운 것들을 잘 실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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