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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maker Sep 16. 2021

히야(hiya), 날 좀 바라봐

필리피노* 감정의 마지노선

2012년 12월 18일에, 필리핀에서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당시 필리핀 UPLB대학교의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동시에 국제미작연구소 (IRRI-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의 인턴을 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필리핀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만난 커플이었다. 한국에서도 예배인도자로 봉사했던 남편은, 필리핀 현지 교회 LBBC(Los Banos**Bible Community) 청년들을 도와 찬양팀을 주관했다.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은 적 없는 연주자들이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 기타를 잘 다루었던 남편이 함께 합주 연습을 했다. 졸업시험을 앞두고 매우 바빴던 와중에도 나름 도와주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어느 날, 연습시간이었다. 드럼 연주자가 계속 틀리는 바람에 몇 번 주의를 주었다. 한국의 합주 연습시간이었다면 나올 수 있을 법한 지적과, 틀린 부분에 대한 설명이 몇 차례 이어졌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 간 줄만 알았던 드럼 연주자가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간다는 말도, 사정이 생겼다는 설명도 없이, 그는 그대로 사라져서 연습시간 내내 자리를 비웠다. 당연히 그날 연습은 망쳤고, 제대로 합주 연습을 할 수 없었던 까닭에, 예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찬양팀 청년들과 함께, 그 드러머는  자리에 없다.


히야 (hiya)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모 선교단체의 필리핀 책임자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더니,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말로 설명해주셨다. 필리피노들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설명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다른 언어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그들 고유의 감정, 히야 (hiya)라는 것이 있다. 굳이 해석을 한다면 부끄러움(shyness) 혹은 수치심(shame)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독특한 필리피노만의 것이다. 마치 한국인 고유의 감정, 한(恨)을 다른 나라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필리피노들은 서로 히야(hiya)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거나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지적은 삼가는 편이다. 히야(hiya)가 손상되는 일이 발생하면, 당사자는 수치심을 준 사람에게 순식간에 돌변하여 폭력이나 복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교회 모임이었고 악보를 틀린 것을 지적하는 수준이어서 그 정도에 그쳤다. 한국문화에서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지적은 어느 정도 용인되는 편이다. 그러나 필리피노에게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 책임자 분은 우리에게 다음번에는 연습을 멈추고 그 사람만 따로 불러 지적하거나 귓속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했다. 그렇게 해서 연습의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그 사람의 히야(hiya)를 꼭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히야(hiya), 나는 (이제) 너의 마음 알아.



  얼마 전 한국에서 하는 강좌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세 달짜리 인터넷 강좌였는데, 강사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메신저를 통한 잦은 소통이 이어졌다. 강사는 나의 정치성향부터 여러 가지를 지적했다.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했기에 잊고 있던 방식이었다.


   강좌의 특성상 개인적인 것이 오픈되고, 그것에 대한 지적과 교정이 이루어져서인지, 시간이 더할수록 마음이 너무 불편해졌다. 마치 나의 히야(hiya)가, 내 자존심과 자존감으로까지 연결되는 그 무엇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결국에는 세 달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다.


   오랫동안 필리핀 친구들의 히야(hiya)를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해온 노력이, 그들과 동일 해지는 결과로 귀결된 것 같다. 그 노력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되었다. 이제는 비판하고 지적하는 분위기를 견디기가 힘들다. 비판과 지적이 객관적인 것이 아닐 때, 그리고 제대로 항변할 수 없을 때는 참을 수 없는 억울함마저 든다. 필리핀 생활 9년 만에 나에게도 히야(hiya)가 생겨버렸다.


  필리피노의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는, 모든 것을 용인해주고 용납해준다는 안도감이 되었다. 내가 가진 것과 상관없이 허용해주고, 뼈 때리는 직설은 하지 않고 참아주는 관용의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힘든 타향 생활을 그나마 잘 견뎌왔다.



다름의 가치



  문화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다름만이 있을 뿐이다. 내 것이 좋으니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선은 통하지 않는다. 한 가지 행동양식이 굳어진 사람들에게, 그것은 비효율적이니 이렇게 고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편협하고 독선적인 나이지만 적어도 필리피노들에게 존중을 배워서 개망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망하긴 했지만 개망하진 않았다.) 내가 만난 수많은 문화를 판단하고 저울질하고 편견으로 바라보았지만, 존중하는 태도를 무기로 그럭저럭 살아내었다.


   문화와 문화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속에서도 다름의 가치가 인정되었으면 좋겠다. 자기의 옳고 잘남을 지적질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참아서 숨 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나의 주장보다 상대에 대한 마음챙김이 더 우선시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필리피노(filipino) 필리핀 사람이라는 뜻. 이 글에서는 필리핀 사람과 필리피노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Los Banos- 필리핀 라구나 주의 소도시 이름


title image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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