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생친구 - 사라
필리핀 로스바뇨스의 IRRI(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해 나누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어떤 나라의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너무 좋으면, 그 나라도 좋아진다. 반대의 경우에는, 그 나라가 싫어진다. 그는 단 한 사람일 뿐이고, 그로 인해 한 나라의 이미지가 결정된다면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IRRI에서 수많은 나라에서 온 한 사람들을 만났으므로, 빠르게 편견과 선입견을 키워갔다. 이성으로는 성급한 일반화라고 생각했지만, 감정적으로는 호불호로 확정되었다.
가장 좋아진 나라는, 미국이다. USA. 한 번도 그 나라에 가보지는 못했는데 미국 친구는 많이 가졌다. 그중에서도 인생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사라 존슨 비 바웃( Sarah Johnson Beebout), 그게 그 친구의 이름이다.
사라는 유명한 과학자다. 세계의 영향력 있는 여성 과학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잠시 지나가는 과정으로 선택했던 IRRI에서 박사 후 과정을 하는 동안, 제이슨을 만났다. 그는 당시 네비게이토라는 선교단체에서 선교사로 로스바뇨스에 와 있었다. 둘은 로스바뇨스에서 만났지만 둘 다 콜로라도 출신이었다. 결국 결혼하여, 사라는 처음 계획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필리핀에서 살게 되었다.
사라와 제이슨 부부는,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우리 부부의 멘토 역할을 해주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가족과 친구들을 멀리 떠나 필리핀에 왔지만, 이들 부부와의 만남으로 인해 마음의 불안이 잦아들었다. 우리의 인생 궤도가 올바른 위치에 있음을 확신하게 해주는 증거 같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로 인해, 다른 미국인 친구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고, 다른 국적이지만 미국에서 오래 산 친구들도 만났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나에겐, 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시청했던,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 미국인들은 자유분방하고, 클럽에 자주 갈 것 같고, 결혼을 여러 번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난 그들은, 달랐다. 크리스천 공동체 내에서 만나게 되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유교 걸인 나보다도 더 보수적인 사람이 많았다. 가정에 충실했고, 자기 일에 성실했고, 클럽에 가는 것은 한 번도 못 보았다. 한국인인 내 친구들이 더 개방적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사라와 제이슨은 모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했다. 하우스 헬퍼 아줌마의 생일에도 꽃다발을 선물하여 행복하게 해줬다. 제이슨은 우리가 장기 여행이라도 가면, 우리의 반려 고양이들을 맡아서 돌봐주었다. 차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주고, 직접 운전하여 두 시간이나 떨어진 공항으로 픽업을 와주기도 했다.
사라는, 연구소 내에서 매우 높은 위치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실수에 관대했고, 권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리더자가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중심을 잃고 쉽게 부유할 수 있는 타향살이에서, 굳건히 붙들 수 있는 닻 같은 친구들이었다.
사라는 여러 문화를 접하며 힘들어하던 나에게 격려와 공감을 준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와 비교하여 필리핀, 미국 문화를 설명해주며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사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한국 문화였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에 문화 규범이 강한 편에 속했다. 강한 내 문화를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다른 문화들이 힘든 것이었다. 사라는, 자기의 경험을 들려주고 관련 책들을 추천해주며, 힘들어하는 나를 도와주었다.
지금 그들은, 떠났다. 더 늦기 전에 필리핀에서 출생한 두 자녀들에게 미국을 경험하게 해 주고 , 노쇠해져 가시는 부모님 곁에 살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떠났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삶이 막막해질 정도였다. 망망대해에서의 기약 없는 표류 중에, 내 몸을 간신히 붙이고 있던 조각배마저 멀어져 가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심정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이었지만, 또 사람들로 인해, 그들의 빛남과 따스함으로 인해 힘든 시간들을 버텨왔던 것 같다. 사람으로 웃고, 사람으로 울며 살았다. 그들에게 받은 수많은 상처를, 또 그들로부터 받은 약으로 치유하며 살아왔다. 지금은 그 복합적인 감정들을 통째로 해석하고 껴안을 시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나라 중, 미국인 친구들과 가장 잘 맞았다. 그래서, 사라와 제이슨을 포함하여 그들 중 상당수가 돌아간 미국으로 나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물론 그 나라는 거대해서, 각 주로 흩어진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꿈이라도 꿔본다. 다시 껴안고, 사랑하고, 가족처럼 지낼 날들이 올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화상회의를 통해 만난다. 각자의 나라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지낸다. 외로운 인생속에서도 세상 어디에선가 나를 지지해주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힘을 내어 살아간다. 그 사실만으로도, 삶이 의미 있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 있다는 증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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