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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maker Sep 29. 2021

카스트라는 족쇄

친구가 되지 못한 인도

필리핀 로스바뇨스의 IRRI(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해 나누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주희 씨, 오늘 저녁에 디왈리(Diwali) 래. 올 거야?”


   IRRI에는 수많은 나라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인도다. 디왈리는 파종기를 맞이하는 인도의 절기로 다른 이름으로는 “빛의 축제”로 부를 수 있다.


“전 은찬이 봐야 해서 못 갈 것 같아요. 디왈리는 워낙 밤에 하잖아요. 애가 잘 시간이라서.”


   카레 냄새도 맡지 못하는 나로서는, 각종 인도 행사에 불려 가는 것이 곤혹스러웠다. IRRI의 여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 옷 한 벌 정도는 가지고 있었고, 파티 때 약속하고 일제히 인도 옷을 입고 오는 때도 있었다. 나도 트렌드에 맞춰야 하나, 하는 마음에 인도에 출장을 가는 남편 편에 받으려고 보니, 유명 브랜드의 옷은 꽤 비쌌다. 한 벌에 족히 백 달러는 넘는 가격이었다.




   인도 사람이 많다 보니, 보스가 인도인인 경우도 많았다. 지위상 아랫사람이 인도인일 때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힘든 일이 많았다. 인도인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에는 자기보다 낮은 지위의 스태프들을 하대하고, 노예처럼 부려먹는 사람도 있었다. 소수의 그런 사람들이, 전반적인 인도인들에 대해 예단하고 피하게 만들었다.


  친구 중 카메룬에서 온 싱글맘이 있었는데, 그녀의 보스도 인도인이었다. 그 보스는 악명이 높아서, 그녀가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돌아가기까지 엄청나게 부려먹고 괴롭혔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녀는 할당된 휴가조차 쓸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도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 그녀의 아들은 필리핀 헬퍼 아줌마에게 하루 종일 맡겨졌다. 결국에는 헬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경고를 해주었던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그녀의 보스가 우리 남편에게 접근하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연구 성과를 빼앗을 계획이니 조심하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마지막까지 그 인도인 보스는 퇴직금도 최대한 늦추어 지급하여, 그녀를 괴롭혔다.


   몇몇 인도인이 그러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인도 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카스트 제도 때문이라고들 했다. 카스트로 인해 사람들을 계급으로 나누어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 권에서는 그래도 지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그렇게 생소하지 않지만, 합리적이고 지위체계에서 자유로운 편인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국제기구 특유의 서열 중심의(hierarchy) 문화와 겹쳐지는 때에는, 한국인들조차도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많다.


   인도인들끼리는 서로 이름만 들어도 어느 계급인지, 브라만인지 크샤트리아인지, 바이샤인지, 수드라인지 다 안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도저히 물을 수 없지만, 사미르가 설명해 주었다. 사미르는 우리 부부의 베프 중 하나로, 인도인이지만 크리스천이기에 카스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일본 NGO에서 일하다가 동료였던 케이코에게 복음을 전하여 결혼까지 했고, UPLB로 함께 공부하러 와 있는 친구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카스트 상 낮은 계급이지만 교육으로 과학자가 되어 국제기구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 경우 이름을 교묘하게 바꾸어 어느 계급 출신인지 감춘다고 했다. 역시 인도에서조차도 교육이 계급을 탈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인도인들은 국제기구 내에서도 자신들만의 세상에 살았다. 그들의 문화는 힌두교라는 종교가 반영된 결과였다. 세계인이 즐기는 요가도 각각의 포스쳐가 힌두의 신들을 예배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연구소 소장의 부인인 리비가 티파티를 열었다. IRRI의 모든 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오랜만의 자유와 수다를 만끽했다.


  우연히 인도 여성들만이 모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들은 모여 앉아있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그들도 서로를 불편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름으로 서로의 출신 계급을 다 알고 있다면, 다가가는 것이 힘들지 어떨지,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감을 잡기 어렵다.


   나도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에게 이질감과 두려움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배척하고 거리를 두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에 종교성을 띤 그들이야말로 신에 가장 목마른 자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구라도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반성을 해본다. 그랬다면, 누구보다도 자기가 가진 것에 피로함을 느꼈던 한 사람이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조차도 그들의 문화를 힘들어하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이제 돌아온 자리에서야, 아쉬움을 느낀다. 그들의 문화에 관심이 없었음을. 친구가 되지 못했음을. 철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만 그들을 대했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 다시 고국에 돌아온 시간 동안, 그동안의 편견과 선입견을 씻어내고 새로운 내가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다음번엔 그들과도 꼭 친구가 될 수 있기를.


타이틀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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