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과 크리스천이 한 집에 산다면(인도네시아)
필리핀 로스바뇨스의 IRRI(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해 나누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타향살이는 외롭다. 특히 대가족 사회인 필리핀에서는 더 그렇다. 필리핀 사람들은 가족을 중심으로 자주 모이고,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국과 고국에 있는 가족들이 많이 그리워진다.
같은 처지인 IRRI의 외국인 친구들과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다. 그중 곤충학자로 일하던, 인도네시아 부부 부융과 니타가 있다. 그들은 둘 다 인도네시아 국적이지만, 독일에서 만났고 미국에서 결혼했다. 둘 다 크리스천이었다.
니타도 그렇지만, 부융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다. 박식했으며, 지혜롭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특별함이나 매력은 그와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웬만한 미국 사람보다 훨씬 영어를 잘했으며, 연구보다 독서를 좋아했는데, 많은 책을 읽어서인지 언제나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했다.
그를 가장 특별하게 만든 것은 가정적 배경이다. 아버지는 무슬림이고, 어머니는 크리스천이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두 종교 사이에서 선택권을 주었단다. 부융과 여동생은 기독교를 선택했다.
부인의 종교를 존중해 준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녀들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그 선택을 존중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부융의 아버지가 얼마나 인격적인 분인지 알 수 있다. 무슬림에게 자식이 개종하는 일이란, 명예 살인을 할 수도 있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간혹 크리스천 학살이 일어나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를 수 없는 아버지의 종교가 부융에게는 아픔이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구원 때문이다. 기독교를 택했을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신으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니까.
그의 어머니는 네덜란드에서 온 선교사님으로 인해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선교사님은 부융의 어머니를 수양딸로 삼았다. 부융과 그의 가족들은 때로 네덜란드에 방문한다. 부융은 그 선교사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특정 종교가 강한 나라에서 크리스천으로 사는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크리스천 문화를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같은 나라의 사람들보다 특별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인도의 크리스천은 윤회를 믿지 않기 때문에 카스트로부터 자유로웠다. 여성인권이 무시되는, 무슬림이 강성한 인도네시아의 크리스천인 부융은, 고질적인 성적 비하나 농담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여성을 특히 인격적으로 대했다.
부융은 이후에 이탈리아 로마의 FAO*로 이직했다. FAO는 선별된 세계 각국의 리더들이 식량대책을 위해 일하는 국제기구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명예로운 직장이다. 운이 좋아서 뛰어난 삶을 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다. 고국을 떠난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두 달 전쯤에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팬더믹 때문에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 만난, 그와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에게 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언제나 호탕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던 우리의 부융이 우울증이라니.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우리에게 연락을 해 왔다. 신앙을 물려준 어머니와 그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했다. 수많은 주일을 어머니와 보내며 성경을 배웠다고 했다. 그의 메시지에서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그는 이제, 살아계신 아버지의 죽음에도 직면했다. 어머니가 갑작스레 가신 탓이다. 사랑하지만 종교가 다른 아버지, 그의 신앙대로라면 영원을 함께할 수 없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염려가 더하다. 팬더믹으로 발이 묶인 상황이라, 그는 기도밖에 할 수 없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6장 3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온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가 믿는 구원이, 그의 아버지에게도 임하길 바란다. 어머니와 보냈던 특별한 시간들이 이제 아버지와도 이어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각주 - FAO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세계 식량 및 기아 문제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유엔 산하 기구로 이탈리아 로마에 소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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