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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maker Oct 01. 2021

세계 여러 나라 기혼녀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시어머니 흉을 본다.

필리핀 로스바뇨스의 IRRI(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해 나누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IRRI의 여자들은, 힘들게 살아간다. 백이면 백, 너무 힘들다는 호소를 한다. 예외가 될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보면, 그것이 어느 정도는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IRRI의 여자들은,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왔다. IRRI는 정책적으로 스파우스 잡(spouse job:배우자의 직업)이라고 해서, 배우자를 따라온 사람에게 직업을 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련된 직책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도 드물 뿐 아니라, 직책의 수도 적어서 스파우스 잡(spouse job)을 가지고 일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남편을 따라온 여자들이 IRRI에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책 없이 늘어난 시간이다. 필리핀은 인건비가 싼 나라다. 4대 보험을 들어주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만만한 보스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외국인 스태프가 고용되어 오면, 모집하지도 않은 헬퍼 아줌마들이 이력서를 들고 직접 찾아온다. 하루 인건비는 400페소에서 500페소 남짓(2021년 10월 현재, 9328원-11660원)이라서, 손쉽고 저렴하게 집안일과 자녀양육을 돕는 일손을 구할 수 있다. 집안일에서도 면제가 되면, 가뜩이나 늘어난 시간이 더 늘어난다.




   늘어난 시간을 때우고자, IRRI에는 스파우스(spouse) 모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중 몇 그룹에 나도 가입을 했다. 제일 처음에 합류한 모임은, ECC(English Conversation Club)로, 영국인 차미안이 주관하는 영어공부 모임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에콰도르, 인도, 마다가스카르의 스파우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연령대는 가장 막내였던 30대 초반의 나부터, 60대의 차미안까지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는 특별한 날엔 각 나라의 음식들을 요리해와서 나누어 먹고, 멤버들의 생일 축하도 해주며 가깝게 지냈다. 영어공부는 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결혼하자마자 필리핀으로 넘어왔던 나는 상대적으로 할 말이 적었고, 그런 분위기도 처음이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그 모든 나라의 여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시어머니 흉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선생님 격이었던 60대 영국 여인 차미안의 남편은, 종자은행 분야에서 저명한 로리 박사님이었다. 차미안은, 집안의 막내인 로리 박사님에게, 그의 어머니가 집착을 하듯 너무 아끼고 참견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60대인 차미안을 아직도 견제하신다고 했다. 그녀를 필두로, 세계 각국 여자들의 시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가 터져 나왔다.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시어머니 흉보기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어머니와의 기싸움이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녀들은 너무나 솔직했는데, 모임의 특성상 비밀이 지켜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임의 다른 멤버들이 언제 자기의 시어머니를 만나겠는가) 더 삘 받은 듯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전 세계 여자들의 삶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남자들도 그들만의 고생스러운 삶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도 여자라서, 여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적이나 연령, 교육의 정도와도 상관이 없는, 무거운 짐이 우리 여자들의 어깨에 얹혀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대개, 사랑해서 힘들다. 자녀양육에 대한 짐, 그리고 아내로서의 짐을 사랑해서 어깨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다. 설령 이혼을 했더라도, 또 직업이 있더라도, 혹은 전업주부라도, 그 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아내, 특히 엄마로서의 역할을 대체해 줄 다른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내 친구 사라만 해도, 커리어에서는 세계 최고였지만 언제나 허덕이며 사는 것을 보았다. 인격적인 남편, 제이슨이 있었어도 그녀 만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짐이 존재했다. 때로 그녀가 버거워서 우는 것도 보았다. 나는 곁에 함께 있어줄 뿐, 큰 도움은 될 수 없었다.


  싱글맘으로 IRRI에서 일하며 홀로 자녀를 키우는 여자들도 꽤 있었다. 남편이 있어도 힘든데, 이들은 오죽할까. 아이라도 아픈 날이면, 싱글맘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마을 커뮤니티의 여자들은, 그럴 때마다 똘똘 뭉쳐 도와주었다. 우리에겐 같은 처지에 있다는 전우애, 의리가 있었다.


  이런 여자들이 하나 되어 운동으로 함께 스트레스를 풀었다. 우리는 요가, 줌바, 수영, 복싱 등을 함께했다. 운동 앞에서는 영어실력도, 학벌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몸의 언어만이 있었을 뿐이다. 서로가 언어 차이와 문화 차이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스포츠 앞에서는 똑같은 여성이었다. 땀 흘리고, 웃고, 운동 후에 따뜻한 차 한잔으로 피로를 잊으며, 우리는 가까워졌다.





  현재, 나를 포함한 그녀들은 모두 팬더믹 때문에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다. 필리핀의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연구소 측에서 외국인 스태프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 재택 근무를 할 것을 권했기 때문이다. 기약 없이 갑자기 헤어진 지 벌써 여러 날이 흘렀다.


  그녀들의 고국 생활이 궁금하다. 고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녀들도 그곳에서조차 이방인이라고 느낄까? 나처럼 더 외로울까?


  붕 뜬 것 같은 고국생활을 마치고, 우리만의 마을로 다시 돌아갈 날이 오길 바란다. 다시 웃으며 수다 떨고 운동하고 차 마실 날들이 그립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시어머니에 대한 어떤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올지가 가장 궁금하다.



타이틀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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